나는 4번타자다. 곧 타석에 올라서게 된다.
어쩌다 이런 타석에 서게 됐을까.
이번시즌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 7차전.
이 게임에서 이기는 팀이 이번시즌의 최강자가 된다.
현재 상황은 9회말 우리 팀의 마지막 공격.
점수는 8:7로 1점 뒤지고 있다. 2아웃이고 주자는 만루다.
내가 안타를 때려내면 이긴다. 내가 안타를 치지 못하면 진다.
투수는 무조건 나를 잡아야 한다. 나에게 고의로 볼 네개를 던져 나와의 승부를 피할수는 없다.
그럼 내가 진루하고, 1,2,3루상의 주자가 한칸씩 밀려 우리팀이 1득점 하게된다.
그러면 동점. 어떻게 보면 우리팀에겐 꽁짜 득점이다.
투수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절대 그럴일은 없을게다.
이 투수는 나를 무조건 잡으려고 할것이다.
나는 무조건 공을 쳐서 안타로 만들어야 한다.
내 야구인생 최고의 기회다. 안타를 치면 나는 영웅이 된다.
안타를 쳐내지 못하면 나에겐 질타와 욕설만이 남게 되겠지..
나를 믿고 이번 타석에 나를 내보내준 감독님의 믿음에도 보답하여야 한다.
감독님은 대타를 쓰지 않으셨다. 나를 믿는다는 거다. 난 무조건 쳐야한다.
시즌 우승이 내손에 달려있다.
드디어 타석에 들어선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홈팀 팬들의 함성이 우렁차다.
반면에 야유를 퍼붓는 어웨이 팀 팬들의 야유소리 또한 우렁차다.
몇몇 어웨이 팬들은 "삼진!!삼진!!"을 외치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욕설도 들려온다.
이정도 야유와 비아냥에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프로야구 팀의 4번타자가 고작 이정도의 야유에 흔들릴 정도라면, 나는 이자리에 서지 못했을게다.
오히려 함성소리에 조금씩 차오르는 긴장감이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것 같다.
타석에 섰다. 앉아있는 적팀 포수와 투수또한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
그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느껴진다.
저 투수는 적팀의 마무리투수. 직구가 위력적인 투수다.
묵직하고 구속이 빠른 직구를 던져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 게다가 제구까지 완벽하다.
치기 어려운 곳에 묵직한 공을 때려넣는 투수. 좋은투수이자 무서운 투수.
마지막 타자인 나를 잡아내기위해 방금 구원등판한 투수다.
칼같은 제구와 묵직한 구위.
하지만 정확한 제구를 가진투수가 더 치기 쉽다.
예상만 맞아 떨어지면 그 위치에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나 하나만 잡고 내려가도 저 투수는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겠지.
하지만 그럴일은 없다. 난 안타를 칠테니까.
투수와 포수가 싸인을 주고받는다. 첫번째 싸인에 투수가 고개를 흔든다.
직구에 자신있는 저 투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포수는 아마도 변화구를 요구했겠지.
이 위험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없는 변화구를 던질만큼 배짱좋은 투수는 아닌가보다.
익숙하지 못한 공을 던져 포수가 잡아내지 못하고 공이 뒤로 빠진다면,
꽁짜로 1루씩 진루. 그런 부담을 첫번째 공부터 짊어지고 싶진 않을거다.
두번째 포수의 싸인에 투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감이왔다. 이건 십중팔구 직구다.
아니, 무조건 직구다. 그럼 코스는 어딜까?
포수가 미트를 대는 위치를 본다. 내 몸쪽 낮은 곳에 포수의 미트가 있다.
몸쪽 낮은공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직구. 확실하다.
배트를 짧게 잡는다. 장타는 필요없다.
2아웃이니 내가 공을 배트에 맞추기만 하면, 주자들은 일제히 뛰기 시작할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건 짧은 안타다. 쳐 내기만 하면 2루 주자까지 홈에 들어온다. 짧은 단타하나만 쳐도 충분하다.
내 몸쪽 낮은 공 직구. 145~150사이의 빠른 직구가 올 것이다. 마음은 정했다.
투수의 손이 글러브에 들어간다. 저 안에서 투수는 분명히 공을 직구 그립으로 잡고있을거다.
100%직구다. 무조건 친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구속이 약간 느리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무조건 직구다. 직구가 아니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
짧게 쥔 방망이를 몸쪽 낮은 스트라이크 코스에 휘두른다. 분명히 맞는다!!
이럴수가? 헛스윙이다..
내 스윙은 정확했다. 방망이를 짧게 잡았지만 홈런이 됐을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왜..?
슬라이더였다.
아래쪽으로 휘는 슬라이더.. 배트 밑 2cm쯤 밑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완벽하게 당했다. 가만히 뒀으면 볼이었을 공..
설마 9회말 2사 만루에서 초구를 볼을 던질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명백하게 내 실수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 칼같은 제구를 보이다니..
역시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운 피칭이다.. 첫번째 공에선 완벽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긴장하지 말자. 다음공이 있다. 고작 1스트라이크다. 다음공을 예상해보자.
첫번째 공을 변화구 볼로 던져서 내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절대로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볼을 던져서 내 헛스윙을 유도하겠지.
하지만 그정도에 속을만큼 배트를 막휘두르진 않는다. 다음은 볼이다.
투,포수가 싸인을 주고 받는다. 투수가 거절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담없는 낮은쪽 볼일것이다. 투수의 미트또한 낮다.
아마도 느린 커브가 들어올거다. 절대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역시, 느릿한 커브볼이다. 멀리서부터 뚝 떨어지는 커브볼.
바닥을 때리고 포수의 미트로 들어간다.
내가 초구에 헛스윙을 한것을 보고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쉽게 배트가 나갈거라고 판단했나보다.
이정도에 속을정도면 내가 4번타자가 아니지..
1스트라이크 1볼.
두번째 공 승부에선 내가 이겼다.
그럼 세번째 공은?
방근 두번째 공이 느린 커브가 들어왔다. 정석대로가면 다음공은 빠른 직구다.
느린공을 던져 내 타격 타이밍을 흐트러놓고 빠른공을 던져 내 스윙보다 빠른직구를 집어넣겠지..
그렇지만 그런 뻔한 볼배합을 할까?
9회말 투아웃인 이상황에서??
음...공 두개를 던졌고 두개 모두가 변화구였다.
직구가 주무기인 투순데 두개연속 변화구를 던졌다라..
그렇다면 너무 뻔해도 정석을 믿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이번에는 직구다. 최소한 이번에는 직구다.
높은공은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니, 낮은 직구다.
첫번째 예상했던 공을 지금 던질게다. 첫번째 타격했던거랑 똑같이 타격하면 된다!!
투수의 손이 글러브에 들어간다. 저 글러브 안에 공을쥔 투수의 손모양만 볼수있다면..
아..정말 1억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난 마음을 정했고, 그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확신을 갖자!
공이 날아온다. 속도를 보니 역시!! 직구다.
확신에찬 배트가 나간다.
어..? 근데 좀 이상하다!!
공이 너무 높다! 이 코스로 배트가 나간다면 절대 못친다!
배트를 내뻗는 손목힘을 반대쪽으로 준다.
가까스로 배트가 멈춘다.
공은 직구가 맞았으나, 높은공이었다. 높은쪽 직구 유인구...
눈은 자연스레 1루 심판을 향한다.
1루심판은 내 배트가 돌아가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린다.
배트가 조금만 더 나갔다면..틀림없이 헛스윙이 선언됐을것이다.
천만 다행이다. 1스트라이크 2볼..
이 투,포수 배터리 콤비는 생각보다 교활하다.
내 예상에서 한발짝씩 더 나가고 있다..
직구를 슬슬 던지기 시작했다.
다음공도 아마 직구. 이제부터 저 위력적인 직구를 노골적으로 던질것이다.
칠수 있을테면 쳐봐라식, 위력적인 직구피칭.
위력적인 직구에는 힘을 가득 실은 스윙만이 살길이다.
어설픈 힘으로 짧게잡고 치면, 공이 날아오는 배트가 힘에 밀려 공이 위로 뜨게되고,
그 공이 바닥이 튕기지 않고 잡히게 되면 플라이 아웃.
그럼 올시즌은 여기서 끝난다.
배트를 고쳐잡는다. 평소에 잡던대로 배트 끝을 잡는다.
힘으로 던진다고? 그럼 난 힘으로 치면 된다.
공이 던져졌다. 약간 높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묵직한 직구.
공을 때렸다.
그러나 역시.. 직구 구위가 대단한 투수다.
배트가 밀려 공이 뒷그물을 때린다.
회심의 공을 회심의 배트질로 받아쳤으나 힘에 밀려 공이 뒤로 밀렸다.
파울선언. 2스트라이크 2볼.
스트라이크 한번만 더 판정을 받으면 경기는 끝난다.
그럼 남은 기회는 한번인가?
그렇지 않다. 2스트라이크에서는 아무리 파울을 때려내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않는다.
내 맘에 들지않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면, 어떻게든 배트에 맞춰 파울로 만들면 된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는 직구는 건드려 파울로 만든다.
어차피 너무 묵직한 직구, 쳐내면 안타는 거의 나오지 않고 공은 위로 뜨게된다.
직구는 걷어내서 파울로만 만든다.
앞으로는 변화구만 노린다.
2번의 직구가 더 날아왔다. 다행히도 두번다 배트를 맞춰 파울을 만드는데 성공.
한번은 어이없는 바깥쪽 변화구가 날아왔다. 당연히 치지않았다.
저정도에 속을리가 없지..
이쯤되면 투,포수 배터리도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변화구만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직구는 무조건 걷어내서 파울이 된다.
그렇다면 던질 수 있는 공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의 직구나, 변화구.
존 밖의 직구는 던질 수 없다. 존 밖인지, 안인지 그정도 궤적 판단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 수 있는건 변화구.
이 중요한 와중에 존 밖으로 변화구를 던지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존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구. 내가 노리던 그순간이다.
지금 친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역시 변화구다. 내가 노리던 그 공이다.
대차게 배트를 휘두른다.
결과는
(끝)
스트라이크와 볼의 배합을 통한 타석에서 심리게임을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수 없어
이처럼 작게나마 스토리를 넣어 찌끄려 봤다.
이처럼 프로야구에서는 매 타석마다 투,포수 배터리 콤비와 타자의 작은 심리 전쟁이 벌어진다.
아, 그리고 정말 위력적인 직구는 저렇게 무조건 걷어낼 수 없으나, 진행을 위한 허구라고 보시면 된다.
뉴비가 싸지른 글이니 얼마든지 태클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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