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존재/화요일, 나영이'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1.09.20 #10. 대답1 6
  2. 2011.09.13 #9. 질문 1 20
  3. 2011.09.06 #8. 외모는 예선전 11
  4. 2011.08.30 #7.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나요? 16
  5. 2011.08.23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6. 2011.08.16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7. 2011.08.09 #4. 과거의 사랑 10
  8. 2011.08.02 #3. 당신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 11
  9. 2011.07.26 #2. 레벨 업 10
  10. 2011.07.19 #1. 연애의 목적 20
2011. 9. 20. 08:30



 지난 번 '질문1' 포스팅에 여러 분들이 답을 해 주셨습니다 ㅎㅎ 무척 감사드려요. 댓글을 통해 이런저런 의견을 듣고 또 묻고 또 대답을 들으면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의 상황에 대해 사람이 판단을 내리는 포인트가 얼마나 다양한지 또다시 실감하게 되기도 했고, 문제의 본질을 좀 더 파악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좋아하는 사람, 당신의 선택은?' 정도가 되겠는데요, 댓글에 나온 내용들과 제 생각을 여기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애초에 제가 이것이 궁금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은 후자 같은 사람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에 따르면 특히 여자들은 그러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결혼은 그 사람이 많이 좋지 않아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해야하나? 라는 것이 궁금해졌어요.

 faker님이 말씀하셨듯이 현실에서는 양 쪽의 요소가 모두 필요하며, 양쪽을 둘 다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고 행복한 연애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다른 분들도 본인들이 선택하신 입장에 대한 이유를 다른 쪽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시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ex- 전자에 해당하는 사과모히토님 "조련이 가능하다", 후자에 해당하는 갑툭튀인님 "누구나 매력은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나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양쪽이 모두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들 전제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요 양쪽을 모두 갖추는 경우가 은근히 쉽지 않다는 것도 꽤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만약 양자 택일을 한다면, 어느 쪽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를 한번 생각해봅니다.  저의 입장은 전자 쪽에 가까운데요, 일단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잘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좋아야' 연애가 시작되는데, 저한테 아무리 잘해줘도 그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이 '연애하고 싶을 만큼'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제게 답을 해 주신 어떤 분의 대답처럼 그 만큼 그 사람이 좋아지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도 꺼림찍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에게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문제에 가깝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입장을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며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ㅠ_ㅠ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신 분들은 제가 '좋아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부분에 대해 '좋아하게 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많이 내 주셨습니다.(절미절미님 등등)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또 생각해보니까 아마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도 그 사람의 캐릭터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내가 어떤 수혜를 받아서라기보다는 그런 걸 할 줄 아는 그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 수도 있다는 거죠. '타인의 대한 태도'를 보는 것이 '내가 느끼는 매력'을 보는 것보다 그 사람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 같다(유수님)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는데 이처럼 '타인에 대한 태도'를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두시는 분들은 확실히 후자쪽이 어필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결국 '내 것이 될 수 있는 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직업현자님) 아아,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후자,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도 생각해볼만한 문제이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중간 결론을 내려본다면 제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이것은 '그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이 하는 행동' 중 어느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개성을 중시하느냐 관계를 중시하느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역시나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동'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그 사람 자체'를 말해주지는 않기도 한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여전히 생각할 거리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사랑하고 싶으냐 사랑받고 싶으냐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던데요, 그럴수도 있을까요?)


 그리고 두 번째는 취향도 팔짜다, 라는 것입니다.
 양쪽이 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이유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기에게 행복하겠다는 얘기이지 않나 싶어서요. 생긴대로 살아야지 뭐 어쩌겠어...라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의 심정일까요.


 그러니 전자에 해당하는 분은 후자를 보완할 방법을
 후자에 해당하는 분은 전자를 보완하는 방법을 찾으시는 것이 맞는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생각해 볼 생각입니만,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ㅎㅎ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재 공고  (13) 2011.10.04
#11. 가치관의 차이-대화가 필요해  (6) 2011.09.27
#9. 질문 1  (20) 2011.09.13
#8. 외모는 예선전  (11) 2011.09.06
#7.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나요?  (16) 2011.08.3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3. 11:26


 진부한 질문하나 해 볼께요. 

 너무 그 사람이 좋은데 나를 힘들고 외롭게 만드는 사람과
 그 사람은 정말 별로 매력이 없는데 나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실건가요?
 그 이유는 뭡니까? 
 (일단 남들이 보기에는 둘 다 빠지는 건 없는 사람이라고 가정할께요. 즉, 오로지 저것만이 문제일 때!)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주는 이게 다입니다.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질문이라구요.


So, please answer me.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6. 08:37

 사람들은 흔히 ‘연애에서 외모는 예선전일 뿐’이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는 뜻이고, 둘째는 외모가 안 끌리면 연애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보통은 두 번째 뜻을 암시하는 용도로 많이 쓰여서 냉소적인 말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은 단지 외모지상주의자의 잔인한 차별발언일까요?
 
 사실 저는 연애에서 외모가 가지는 중요도를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끌림’을 결정하는 사람의 매력 중에 특히 외모의 영향력은 제법 큽니다. 그건 왜 일까요?  아마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외모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면에 끌리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의 다른 점들도 더욱 좋아 보이기 마련이라 외모에서 이미 끌렸다면 그때부터는 호감을 갖는 일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죠. 그러니 실제로, 외모에서 끌리지 않았다면 그 다음에 더 매력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 한, 외모에서 끌린 경우만큼 호감을 갖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외모는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정보이므로 (일정 기간까지는)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구요. 그리고 ‘연애’라는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른 끌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연애를 다른 관계와 차별화하는 것은 ‘로맨스’나 ‘섹스어필’ 같은 ‘본능적 끌림’인 경우가 많은데 ‘외모’는 이 본능적 끌림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분명 ‘외모’는 예선전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호감이 시작되어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때 느끼는 호감에서 다른 관계와 차별화되는 ‘끌림’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연애’의 예선통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외모는 일반적으로 이 조건들을 충족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모’가 연애 예선전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연애’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로맨스’나 ‘섹스어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외모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저 두 가지 요소가, 다른 관계와 차별화되는 연애라는 관계의 특징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얘기로 통용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예선에 오르고 나면 외모는 더 이상 우선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물론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결승을 좌우하는 요소는 아니기 마련입니다. 이건 마치 학점만 좋다고 취업이 잘 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0만 넘으면 문제없고 혹 넘지 못해도 다른 강점이 있으면 취업에 성공할 수 있지만 학점이 많이 나쁘면 취업이 힘든 거죠. 학점도 좋고 훌륭한 디자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회사가 원하는 것이 경영 전문가라면 학점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채용은 불가능한 것이구요. 외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돌아서 쳐다볼 정도의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당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거나 평생을 함께할만한 다른 요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결국,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외모도 중요하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외모는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외모가 안 끌리면 연애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끌리는 요소에 외모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끌리지 않아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모가 안 끌려서 싫다’라는 말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도 아니구요. 외모로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꽤나 잔인하고 잘못된 일일 수 있지만 ‘호불호’는 가치판단이 아니니까요. 사랑과 마찬가지로 호감도 의무가 아닙니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냥 "just not that into me"일 수 있는 겁니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면 내가 별로 매력이 없나, 의기소침해지기야 하겠지만, 결코 그렇기 때문에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구요. 그 기분에서 벗어나서 생각해보면 끌렸다면 좋았겠지만, 그냥 내 외모가 맘에 안 끌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외모가 거절의 이유가 되는 경우에 우리는 특히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네가 고기를 안 좋아해서 싫대’라는 이유나 ‘네가 성격이 급해서 싫대’라는 거절의 이유보다는 ‘네 외모가 안 끌려서 싫대’라는 이유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은 좀 덜하지만 과거에는 심지어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거든요?)

 제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째로, 앞서 말했듯 외모는 일반적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큰 끌림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자신의 외모가 매력적으로 어필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일반적으로 인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치’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 우리에게 내재된 생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치’가 있다면 응당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죠. 그러므로 ‘보상’이 없다면 자연히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연애에서 ‘보상’이란 ‘관심, 호감, 사랑’같은 것이겠지요. 즉,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호감이 안 간다. 라는 명제는 외모가 어필하지 못하면 사랑(보상)받지 못하므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모’를 가지고 가치평가를 했으니 옳지 않다는 비난이 따라올 수 있는 거죠.


 결국 외모가 우리로 하여금 가치 없다는 느낌을 들게 할 수 있다면, 외모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가와 어떻게 느끼는 가는 다를 수 있고 둘 다 중요한 것이지요. 실제로 사랑받을 수 있어야 사람은 자기 가치를 더욱 확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양한 매력에 눈을 떠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한 가지 매력만을 유일한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훨씬 적은 사람밖에는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다양한 매력에 눈을 뜨고 그것을 인정하는 일도 곧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을 하다보니 여러분을 만나서 여러분의 외모적인 매력이 뭔지를 서로서로 말해주고 싶네요. 이미 제가 얼굴을 아는 분들은 궁금하면 물어보세요. 말씀해 드릴께요. 나에게도 말해줄 게 있을까?라며 주저하지 마세요. 누구든 자기 외모가 가진 매력이 있거든요. 혹 제가 말 못한다해도 제가 모를 뿐이니 상처받지 마세요ㅎㅎ 그런 때를 대비해서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겠네요!


 아. 오늘 좀 오지랖입니다.

 아마 시간이 너무 늦어서일 거에요. 모른 척 해주세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대답1  (6) 2011.09.20
#9. 질문 1  (20) 2011.09.13
#7.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나요?  (16) 2011.08.30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2011.08.23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30. 08:30




 20대 중반을 지나고 나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20대 초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드는 시기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직장이 생겨도 직장에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CC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고요. 게다가 거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인생의 큰 진로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헌신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이 시기는 '소개'로 만나는 일이 가장 일반적인 만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개팅'을 부탁하거나 제의를 받거나 시켜주거나 하는 일들이 무척 빈번해지면서 가장 많이 묻게되는 질문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입니다. 20대 초반에 소개팅을 할 무렵 그런 질문을 던지면 그 때 돌아오는 대답들은 무척 막연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좋아'라는 식의 태도랄까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감히 말하건데 그건 어느 정도는 뭐가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취향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고, 연애도 모르고, 관계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무한한 가능성 같은 거지요.


 그렇지만 경험을 통해 얻는 '체'로 이런저런 것들을 거르고 나면 그 가능성은 훨씬 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소개팅을 즐기는 분이 있으시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사실 한두번은 즐겁더라도 너무 여러번 소개팅이 매번 무산되면 소개팅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을 시도하지 않게 되는 셈이고,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확률'은 그만큼 낮아지겠지요. 특히 누구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면 좀 덜하겠지만 개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효율은 필요성이 높습니다. 자신과 매치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그만큼 낮아서 시도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또한 '누구를 만나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결국 만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 뿐이지 그 범위가 무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소개팅을 주선할 때, 정말 연애를 하고 싶어서 소개팅을 원하는데도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라고 묻는 대답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는 무척 답답합니다. 물론 직관적인 사람들의 "느낌이 좋은 사람"과 같은 대답이야 어쩔 수 없지만 주선하는 과정에서는 반영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건 최종 결정시 본인의 기준으로 쓰면 되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을 데려와야 느낌이 좋을지 정도는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는 겁니다.


(아아. 이걸 말하다보니 예전에 제가 진로상담을 받은 일이 생각나는군요. '어떤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무척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했던 저를 보는 상담사의 심정이 아마 그런 것이었겠어요...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뭔데!'라고 묻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인간이해에는 역지사지만한게 없네요.)


 물론 겨우 몇 번의 한정된 경험을 통해 형성된 스테레오 타입에는 분명 함정이 있을 겁니다.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체를 너무 절대적으로 고수하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을 만나야 정말로 좋을 확률이 높은 것 또한 맞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애는 좋아야 시작되는 것이구요.

 그렇지만 의외로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론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어떤 사람이 "좋다"라는 동기에는 굉장히 다양한 측면의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애에 대해 절실히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복잡한 현상을 다 따라가기 힘들거나, 혹은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 마디로 알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거죠.

 그럴 때 우리는 전문가를 찾습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지에 대해 '대인 매력(Interpersonal Attraction)'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수십년의 연구 결과, 대인매력을 느끼게 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고 밝혀졌는데, 그 요인들 중 한두가지의 장점들은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이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요인이 다양하다는 것은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


 그 대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8가지 요인은 이런 것들이라는군요.


 1.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

 : 예쁜 여자, 착한 여자, 키 큰 남자, 다정한 남자 같은 요소를 말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2. 상대가 평소 어떤 행동을 하는가
 :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내가 호감이라고 느끼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을 말합니다.

 3.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자기의 성격이나 자존감, 자신감이야말로 연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4. 나의 심리 상태와 행동 특성은 어떤가
 : 기분 좋을 때 만나는 사람은 호감이 갑니다. 또 생리적으로 흥분한 상태(무드가 있는 상태)이거나 도움을 받는 상태에서도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5. 서로의 특성은 얼마나 비슷한가
 : 태도나 의견이 유사하거나 신체적 매력도가 비슷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가치관이 비슷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성격의 경우는 다르다고 하네요.

 6. 서로 얼마나 서로 교감을 나누는가
 : 연애 감정은 상호작용을 통해 깊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만남의 횟수나 빈도, 호감표현의 적극성,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는지 등이 연애감정이 깊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7. 연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가
 :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성을 만나 연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데,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일정 연령이 되어도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8. 어떤 장소나 분위기에서 만나는가
 :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어떤 장소에서 만나는지에 따라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고 합니다.
 
 
 이상의 8가지 요인은 '어떤 사람이 좋은지'에 대한 메타적인 틀을 제공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각각의 틀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매력의 요소는 또 다르고 다양하겠네요.
 '어떤 사람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틀을 고수할 필요는 없되, 현재까지의 경험과 판단으로 자신의 틀이 뭔지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좋습니까?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reference
1) 이철우,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북로드, 2008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질문 1  (20) 2011.09.13
#8. 외모는 예선전  (11) 2011.09.06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2011.08.23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4. 과거의 사랑  (10) 2011.08.0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3. 08:30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 허수경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中 





 사람이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양미숙씨가 그랬어요.(영화 <미스 홍당무>에서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람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 누구나 자기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을 거구요. 본인이 그 이유가 뭔지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자기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말이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거기에도 바람직한 이유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그걸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요.

  요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적어도 그 당시 그 사람의 판단 하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는 행동을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자기의 이유와 판단에 따라 한 행동이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제스쳐가 서로 다르듯이 거기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에 대한 기대도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것을 의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게 왜 그랬는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가'라는 원망의 의미라면 
 원망스러운 심정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책임소재를 묻는 대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야 했으니까'라는 대답이 남지 않을까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것이라면 대답이 좀 달라져야겠지만요. 저는 진심으로 그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을 잘 못봤거든요.)

 앞서 말했듯, 자기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행동이 다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상처가 될지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상처를 준 것은 응당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응당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제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다만 제가 하고픈 말은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셨다면, 
 상대가 결코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는 '2차 피해'적인 상처에서는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게 여러분에게 상처가 될 줄 알았다면, 혹은 상처가 되지 않을 다른 행동이 뭔지 알았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의도보다 더 조심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상처주는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의도되지 않아도 상처는 아프지요. 그런 점에서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좀 더 잘 알아서, 좀 더 인간으로서 역량을 키워서, 타인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 어떤 행동을 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아도 결국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요.


 갈길이 멀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6. 10:25

 

 지난 주 저는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그런 종류의 자리였는데, 보통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친구의 남자친구 덕분에 모처럼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은 친구의 남자친구는 장난기가 무척 많은 사람 같았습니다. 게다가 미리 친구에게 들은 바대로 ‘흠을 잡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더군요.

 

  그 분이 끊임없이 장난을 치는 내용은 제 친구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는 태클들이었습니다. 그런 장난을 제 친구가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또 거기서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분의 말이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 일련의 내용들은 무척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주는 패턴이기는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는 뜻입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전형적인 상황 중 하나는 각자가 각자의 입장을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데”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런 패턴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상대방을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평가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가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미 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뜻하는 전형적인 표현이 자주 쓰이기도 하지요. 바로 Don't judge me.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다음의 반응은 말문이 막히거나 I didn't judge you!라는 반박이 이어지지요. 아마 누군가를 judge한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의미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서구만큼 오래지 않은 '자유' 혹은 '개인주의'의 역사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나 호불호나 행동에 대해서도 옳고 그른 것을 따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꼭 국적에 국한된 문제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경향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무의식중에 '무엇도'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다’는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이거보세요. 벗어날 수가 없군요.) 혹은 그것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인지를 떠나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조금 위험한 데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전제할 때, 내 의견이 옳은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은 그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려 생각할 때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흑백논리는 버려야 하는 거지요. 잘잘못에서 누가 ‘더’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승패 두 가지의 흑백논리로 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둘 다 잘못이 있다’고만 생각하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는 게 맞겠지요. 그리고 사실 싸움이 일어났는데 어느 한 사람이 온전히 옳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므로 그게 가장 사실에 가까운 진술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옳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 달라는 것은 사실 사랑하는 사이에서 통용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옳고 그름’의 감정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을 털어놓으면 ‘그 사람이 진짜 잘못했네’,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며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들에게 위로를 얻습니다. 하지만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의 마음은 고맙게 받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연인 사이에 원하는 게 맞지 않아 싸운 경우, 내가 옳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 뿐이고, 상대가 요구하는 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 상대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있는 것뿐이라는 거지요.

 

  이 말은 우리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를 내 힘이 닿는 한 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게 옳기 때문은 아닙니다.

 

어떤 차이가 있냐구요?

‘옳기 때문’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므로, 하지 않았을 때 물을 책임과 의무만이 남지만

‘사랑하기 때문’은 어떤 순간에도 내가 받아서 고마운 것이므로, 더 많은 다음 단계를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에 대해서는 이행하지 않았을 때 비난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슬프지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의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슬프게 만들지 않으려면 사랑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것 뿐입니다. 
 슬프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러지 않으려면 표현해야한다는 걸 잊을 뿐이구요.
 그러니 비난보다는 다만 그걸 일깨워 주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래서, 사랑의 감정에 자꾸만 이유와 당위를 붙이려는 것이 아닐까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은 어디에도 물을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상처가 되고 두려운 일도 없겠지요. 그래서 마치 그것이 의무인 것처럼 상대방을 몰아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겠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바람을 피우고 뭐 이런 도덕의 범위를 벗어나는 건 말구요)' 말과 행동을 하는 연인을 가진 여러분. 이해는 사랑을 돕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사랑하니까 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았다고 당신을 비난하는 연인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세요.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한 사랑이 꽤나 아프고 두려웠던 걸 지도 모르지요.)
 


  결국 사랑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요?

  아마 그래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나요?  (16) 2011.08.30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2011.08.23
#4. 과거의 사랑  (10) 2011.08.09
#3. 당신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  (11) 2011.08.02
#2. 레벨 업  (10) 2011.07.2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9. 08:30
 

 늦은 밤, 한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를 찾아 다시 들어보는 일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만나기도 하고요. 노래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힘이 있지만, 몇몇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보통 그것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대상에 해당되곤 합니다. 그러니까, 노래는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요, 지금 음악을 듣다가 바로 그런 노래를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음악이 몇 개 있습니다.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많이 연상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리처드 막스의 now and forever라든지 카니발의 취중진담이라든지 영화 nineost 중에서 니콜키드만이 부른 unusual way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노래들입니다. 그 노래들을 들을 때면 과거 사랑의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보석같이 아름다운 추억들이죠.

 

 어머 왠 자랑질이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누구나 그런 추억 하나쯤은 있잖아요. 그런 거 없으면 연애한 거 아니잖아요.... 미안해요. 사과할께요.

 

 아무튼 과거의 연인이라고 하면, 보통 연인 사이에서 질투의 대상이 되는 단골 소재지만 저는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할 사람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면, 과거의 사랑을 모두 지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은 분명 행복한 기억이고 그런 자존감은 우리가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헤어진 후에는 각자가 소유한 추억이니까요. 물론 지금 연인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살짝 질투 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 질투는 그 과거가 현재를 위협할까봐 생기는 일시적인 두려움일 뿐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걸 믿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자든 여자든 과거의 일에 질투하는 연인에게 왜 다 지나간 일 가지고 그래? 라고 몰아붙이지 말아요 _)

 

 사실 과거의 연인들은 지금 그 사람을 있게 해준, 어떤 부분에서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 이 사람이 있는 거고, 이 사람이 과거의 연인들 때문에 성장했다면 저는 그 수혜자일테니까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저 역시 저의 과거의 연인들에 대한 마음을 과거로 한정해 추억하는 것에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확실히 과거의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때 말입니다. (그런데 보통 남자들은 과거 연인을 현재에 만났을 때 잘 단절을 못한다는 데 사실인가요? 남자의 마음은 방이 여러 개라서 우선순위가 있을 뿐 지나간 연인들도 모두 마음에 담고 있다는 얘기 말이에요.) 물론 연인이 싫어한다면 굳이 티를 낼 필요는 없죠.

 

 연애가 끝나면 모든 시간이 없어진 것처럼 reset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사실 이별을 빨리 극복하려면 필요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더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연애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을 그 당시 눈앞에서 치우되, 다 버리거나 지우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연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의 일부니까요. 그러고 보면 연애란, 사람이 얼마나 여러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그 중 일부가 아니라 그 전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한 단계 레벨 업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훗날 아이들 앞에서 서로 과거의 로맨틱한 에피소드를 꿰고 있는 남편과 저를 상상하곤 합니다. 장난스럽게 서로의 로맨스를 들추다가 당신 꽤나 대단했네.’라면서 그런 나를 차지한 게 바로 당신이지라고 닭살 돋는 상황을 연출하면 아이들이 어우 엄마아빠 그만 좀 해라고 짜증내는 (나랑 남편만?) 행복한 그림이에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과거의 사랑을 모두 지우는 게 좋으십니까, 아니면 남겨두는 게 좋으십니까.

 연인이 그런다면 싫을까요?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단절시켜서 간직하는 것은 어느 정도로 가능할까요?

 

 언젠가 손자손녀에게 자랑할 보석 같은 추억 하나씩, 간직하고 계실테죠. 그 내용을 여기서 물을 수는 없지만, 감히 무척 궁금합니다. ㅎㅎ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추억들이 많이 생기시기를 기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온전히 의도된 상처는 없다  (2) 2011.08.23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3. 당신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  (11) 2011.08.02
#2. 레벨 업  (10) 2011.07.26
#1. 연애의 목적  (20) 2011.07.1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2. 08:30


 심리테스트 입니다.

 

 피터와 로라가 있었어요. 둘은 아주 사랑하는 사이였죠. 그런데 피터는 섬에 살고 로라는 육지에 살았어요. 가난했던 둘은 너무 보고 싶지만 배가 없어서 만날 수가 없었어요. 로라를 흠모하던 마이크는 섬에 갈 수 있는 배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줄 테니 자신을 만나달라고 했어요. 로라는 고민을 했지만 거절했어요. 로라와 피터는 서로 그리움에 사무쳤어요. 그러던 중 로라를 흠모하던 스티브가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내면 피터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로라는 망설였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터의 친구 프레드가 피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말았죠. 피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절망을 했어요. 결국 피터는 자살을 했어요.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잘못한 사람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세요.(심리 테스트- 총 5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 피터, 로라, 마이크, 스티브, 프레드)

 





 자, 이제 결과입니다. 잘못했다고 생각한 순서가 사랑을 할 때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서입니다.

 피터 = pride, 로라 = love, 마이크 = money, 스티브 = sex, 프레드 = friendship

 

 어떻게 나오셨나요? 잘 맞는 것 같으신가요? 처음 이 심리테스트를 주변 지인에게 하게 했을 때 “‘특정 인물’은 절대 잘못한 인물이 될 수 없을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요, 물론 이 심리테스트가 완벽한 척도는 아니기 때문에 허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누군가는 그 인물이 더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점이에요. ㅎㅎ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심리테스트이므로, 결과가 얼마나 잘 맞느냐보다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변 지인들에게 테스트 해 본 결과 큰 방향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답니다.ㅎㅎ)

 

 그리고 사람마다 그리는 연애의 그림은 결코 한 가지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애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기 때문이지요. 위의 심리테스트만 생각해보아도, 프레드가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한 사람과 로라가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은 무척 다를겁니다. 전자는 친구같은 재미나 편안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후자는 두근두근 로맨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야하고 후자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겠죠. 마이크라면 적어도 '널 굶길 일은 없을' 사람을 만나야겠고, 언제든 백(bag) 몇 개쯤 사줄 수 있다면 더 좋을테죠? 피터라면 자존감을 채워주는 사람이 좋을 것이고, 스티브라면 틀림없이 섹스어필이 되는 상대여야 하겠지요.


 연애의 요소가 다양하다는 것이 그다지 새로운 얘기는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그에 대한 이론도 여럿 존재하고요. 가령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 같은 것이 잘 알려진 이론 중에 하나입니다. 친밀감, 열정, 헌신을 사랑의 요소로 해서 그것들이 그리는 삼각형의 모양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이론이지요.
궁금한 분은 여기를 → http://blog.naver.com/cristy82?Redirect=Log&logNo=20017788809


 중요한 것은 연애가 여러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는 것 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연인(혹은 예비 연인)이라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백전백승의 비결은 지피지기지요.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것이 서로 다를 때 같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그림이 나와 다를 때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쉽지 않은 문제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단지 서로가 원하는 그림이 다른 것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이 무척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잠깐 잊어버리고 생각해보면, 서로 원하는 사랑의 모양이 다른것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거나 비관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 따르면 각 요소가 균형을 갖추고 있을 때를 안정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서로 그림이 다르다는 것은 그 균형을 위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삼각형’이론이 맞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는 더욱 안정적인 사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문제는 거기에 사랑이 있다는 걸 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끝까지 노력할 마음을 가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가 또 있겠지만, 어쨌든 조율하려는 노력을 하려면 우선 어떤 그림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계발서들이 항상 말하듯 (안 좋아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분명 일리있는 말들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무얼 원하는지 알아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원하는 연애의 그림은 무엇인가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4. 과거의 사랑  (10) 2011.08.09
#2. 레벨 업  (10) 2011.07.26
#1. 연애의 목적  (20) 2011.07.19
나영이  (8) 2011.07.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7. 26. 08:30


 새벽 한시 반. 저는 결국 백기를 든 상태입니다. 
 '온라인'과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저는 인류가 어디까지 사이버 세계에 의존해도 좋은가 의문을 가져보곤 합니다. 뭐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제 넷북에서는 티스토리에 글이 안 써집니다. 다른 컴퓨터를 빌려쓰다가 그 집에서 쫓겨나고, 그래서 찾아온 피시방에는 한글이 깔려있지 않습니다. 원고를 옮길수가 없군요. 결국 원래의 원고는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이런 시간이 되니 왠지 진실 게임이나 비밀 이야기 하나씩 고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얼마전에 지하철에서 한 커플을 보았는데요, 남자는 여자친구가 예뻐서 견딜수가 없었는지 아기에게 하듯 말 한마디가 끝날때마다 여자친구에게 뽀뽀를 하더군요. 공중도덕과 미풍양속에 대한 의식이 있는 동방예의지국의 성인이라면 조금 눈살을 찌푸릴만도 한 상황인 것 같긴 했는데 저 조건 중에 저한테 뭔가 결핍이 있는지 그냥 매우 예뻐보였어요. 부러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분명 저보다 어려보이는 무척 앳된 얼굴의 남녀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젊다는 것은 그래서 참 부러워요. 많은 부분이 용서가 되니까요. (물론 저도 아직 젊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좀 애매해서요.) 며칠 동안 내내 머릿속에 잔상이 남던 그 커플은 저의 20대 초반을 돌이켜보게 했습니다.

 제가 연애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을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의 연애는 무척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았어요.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는 저 자신이 불안정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데, 20대 초반의 저는 무척이나 발랄하지 못했어요. 물론 일상에서 즐거운 일도 많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고민이 많았어요. 가끔 그 당시의 연애를 돌이켜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 적지 않아요.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일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그 때 그러지 않았을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의 저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그때의 저는 아직 그런 실수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족하긴 했어도 연애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지금 보면 너무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게 제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당연히 그런 실수들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결국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리 귀뜸해 줬다고 해도, 지금의 제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거란 생각입니다. '아는 것'에도 여러 차원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그 때는 그러는 게 맞는 거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지금 또 그러지 않는 수 밖에요.

 그런 의미에서 젊은 인디 밴드는 청년다운 치열한 고뇌와 약간은 철없는 불평불만을 좀 말해도 좋은 것 같습니다. '내 서랍속의 바다'를 부르다가도 언젠가 '다행이다'를 부르게 될 테니까요. "몰라, 다 몰라, 나한테만 왜이래, 외로워 징징"하다가도 "감사하다, 고맙다, 다행이다"하게 될 거란 말이지요.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감정만 보다가 다른 것들도 보게되는 거죠. '연애레벨'이라는 게 있다면 '레벨 업'하는 겁니다. 

 지나고 보니 20대 초반은 저에게 상황보다는 감정이 버거운 시기였습니다. 버거워할 상황이 아닌데도 넘치는 감정에 버거워하던 저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차라리 불행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생각입니까.) 하지만 죄책감 가질 일이 전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상황이 감정을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 힘들게 하는 건 상황이 아니라 감정이거든요. 내 그릇에 넘치는 파토스로 버둥대는 것. 어쩌면 청춘이란 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버둥대다가 그 주체 안되는 파토스를 좀 가라앉히고 나면, 해결책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너무 코 앞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안되잖아요.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해결해 나가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내 문제가 영원한 게 아니라는 믿음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조금 더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레벨 업이죠. 그치만 레벨 업하려면 믿음을 가져야하고, 그러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러려면 감정이 가라 앉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감정에 버둥대야죠. 어릴수록 보통 파토스가 넘치니 하는 일마다 아마 엉성해지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게 다 단계니까요. 저도 아직 그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너무 오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은 어쨌든 번외로 접어두고요...

 아직은 뭐든 좀 엉성한 시기. 제가 아주 어리고 젊었을 때는 (물론 지금도 젊습니다만) 그런 엉성함이 무척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좀 엉성해도 매우 예뻐보입니다. 언제까지나 엉성하지 않을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요? 엉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나 혹은 자신이 엉성한지 모르는 무지도 사랑스럽습니다. 둘 다 결국 시도하게 만들테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연애든 저는 많이 연애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상태였을 때, 나와 같은 처지의 남자 동기와 함께 '우리는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나누었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시기가 생각나네요. 아, 그 친구도 저도 처음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꾸준히 잘 만나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여기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날이 올까'라고 생각한 몸까지 배배 꼬이는 시간들도 생각나네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물론 그렇다고 말해줄겁니다. 그 얘길 들었을 때 지금 저만큼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할테지만요.

그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할까봐 항상 두려웠지만,
이렇게 모두, 느리든 빠르든 각자, 다음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어우. 밤에 써서 그런지 다시 읽어보니 내일 아침에 지우고 싶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거 해보겠어, 라는 생각으로 포스팅을 마치려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레벨업을 응원합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4. 과거의 사랑  (10) 2011.08.09
#3. 당신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  (11) 2011.08.02
#1. 연애의 목적  (20) 2011.07.19
나영이  (8) 2011.07.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7. 19. 08:30
 

 혼자 살아가지 않는 우리에게 관계란 모두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좁고 친밀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연애 말입니다.

 

 제가 왜 굳이 연애인지 이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린 이미 연애에 관심이 많죠. 커플도 관심이 많고 솔로도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연애에 관심이 없는 분도 분명 있으실테죠. 연애 강요하는 사회는 폭력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강요도 폭력이므로 동의합니다.) 우리가 연애에 관심을 갖는 이유야 사람 수만큼 다양하면서 또 대동소이하겠지만, 연애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연애는 즐겁기도 하지만 무척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 관계를 통해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저의 이유를 한번 말해 볼께요.

 

 왜 연애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연애예찬자라는 것을 먼저 밝히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연애가 참 좋아요. 왜냐고요? 우선 무엇보다도 연애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서 좋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그 자체로도 무척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 행복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 줄 수 있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면 나도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을 쏟을 소중한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힘이 되니까요.
 
 게다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거든요. 그러니까 연애를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더 넓은 범위의 타인도 쉽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인지 배우게 되기 때문이죠. “연애하더니 사람 됐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것도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더 잘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잘 할 수 있다는 얘기도 이와 상통하는 말이죠.

 

 그러나 연애의 가장 큰 메리트는 연애가 타인과 깊이 관계하고 자신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 중 하나라는 사실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성인이 되면 우리 관계는 본질적 자아의 부딪침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자아들끼리의 만남이 주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아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기보다 의식적으로 만드는 자아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어떤 모습인가 알게 될 일이 잘 없습니다. 그런데 연애를 하게 되면요, 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드러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요, 보통 무척 싫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왜냐면 서로 달라서요. 나는 이렇게 하고 싶고 너는 저렇게 하고 싶은데 안 맞아서 짜증이 막 납니다. 게다가 부딪칠 일 없었던 탓에 '난 이 모습으로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그러니 난 매끈매끈한데, 너는 왜 그렇게 울퉁불퉁하니'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사실은 너도 나도 울퉁불퉁할 텐데요. 보통 사회적 관계에서 이렇게 짜증나면, 그냥 진심으로 상대 안하고 무시해버리거나 용건이 끝나면 그때부터 안보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 연애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관계인거죠. 이 사람이 좋으니까, 무시하거나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부터 엄청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싫어도 그 사람과 맞을 수 있도록 나를 바꿔보려는(혹은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이 지점 저는 좋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린 울퉁불퉁한 본질적 자아를 다듬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너무 힘든 작업이라서 다른 관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연애는 그 사람이 무척 좋아서, 계속 함께 하고 싶은 관계이죠. 그건 무척 행복한 경험이기 때문에 그 행복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 힘든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더라는 말입니다.
 
 만약 거슬릴 것 없이 잘 맞는다면 그런 노력이 덜 필요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도 다른 점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게다가 그 사람을 좋아할수록 기대치가 커져서 조금만 달라도 무척 거슬릴 수도 있고요.  결국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더해질수록 깊어질 수 있고요.
그리고 이 지점은 관계에 대한 노력을 연습수 있는 장이 됩니다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지요.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때로 무언가를 더 다듬어야하는 게 아닌데도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물론 처음에는 대체로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 의도치 않게 상처 입혀서 결국 이별에 이르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 지점이 좋습니다. 거기서 또 얻는 게 있거든요. 이별이 주는 고통은 엄청난 반성의 계기가 되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발전시키려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데미안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알을 깨야 한다고요. 결국 그 아픔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거겠지요.

 

 그래서 저는 연애의 목적 중 하나는 본질적 자아의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그 과정에서 인간적 한계와 미숙함으로 많은 좌절과 생채기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걸 치유해 가면서 우리는 더 성숙해 갑니다. 궁극적으로 연애를 통해 우리는 행복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연애가 무척 좋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요.

  그래요, 지금까지 연애의 매우 이상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것 인정할께요. 그렇지만 언제나 인간은 '이상'을 '지향'하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입니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고요. 그러니까 시행착오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는 연애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깨지는 지점. 말해놓고 보니 이별이 좋다는 건가요 , 이래서는 곤란한데 ㅎㅎ 연애 에세이가 첫 장부터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연애, 좋아하시나요?

여러분 연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가장 보통의 존재 > 화요일, 나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판단하면 사랑할 수 없다  (9) 2011.08.16
#4. 과거의 사랑  (10) 2011.08.09
#3. 당신이 바라는 연애의 그림  (11) 2011.08.02
#2. 레벨 업  (10) 2011.07.26
나영이  (8) 2011.07.1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