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5. 08:32






신입생 합격자가 발표되었고, 2012
년이 되었습니다. 시무식도 했고, 19일부터는 보충수업이 시작됩니다. 3월이 되면 입학식도 할 테고, 또 다른 일 년이 시작될 것입니다. 담임교사에게 가장 바쁜 시기는 3월입니다. 이것저것 조사할 것, 준비할 것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아이들 이름 외우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급식비 감면 대상자 파악 작업 역시 매년 3월이면 하는 일입니다. 요즘 어디 밥 굶는 아이가 있겠냐고 속 편히 생각하기 쉽지만, 2012년의 대한민국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합니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이 745만 명 쯤 된다고 하는데, 2011년에 점심값을 지원받은 학생은 97만 명에 달했습니다. 35명이 한 반이라면 한 반에 4~5명씩은 꼭 있는 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그만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해 예산안에 대해 개거품을 물고 화내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예산부족을 이유로 복지예산을 크게 삭감했고, 그 과정에서 초중고생의 급식지원비가 0원으로 책정된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서울시 전면무상급식과 오세훈의 자폭, 곽 교육감에 대한 권력층의 보복 등 여러 사건들을 지나왔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초중고 무상급식과 관련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논의의 층위가 한 단계 높아져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들먹이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선별적 복지라는 것이 좀 이상해 보입니다.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를 주장하는 이들이 주장의 출발점을 자신들의 논점이 아닌 보편적 복지라는 논점의 반대편에서 출발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한나라당이나 조선일보 등에서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재벌 자녀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복지혜택을 주자는 논리를 펼치면 될 것을 굳이 보편적 복지의 반대점에서 반박을 하려니 이런 무리한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우리나라 초중고에 부잣집 아이들, 특히나 재벌 자녀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 아이들이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그걸 '혈세'라고 표현할 것까지 있을까요. 무상급식을 시행하면 1년에 2조원인가 하는 돈이 추가로 든다고 합니다. 큰 돈입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재벌 자녀들이 공짜로 먹는 밥으로 인해 추가되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재벌이라는 계층이 몇 %나 될까요? 이걸 논의한다는 자체가 우습습니다차라리 재벌들이 자녀들에게 부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부리는 갖은 편법과 불법 수단을 제대로 적발해 납세 의무를 정직히 수행하게만 해도 그 자녀들에게 공짜 밥 주는 것 이상의 재원은 나올 텐데 말입니다.


저도 2010년부터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습니다. 는 제가 낸 세금이 우리 아이들의 밥값으로, 교육비로 지출되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일 년에 수십 억 이상의 돈이 청계천 광장 유지비로 나가고 있고, 오세훈이 깔아놓은 시청 앞 잔디 관리비로도 그만큼의 돈이 나가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 뜯어내고 새로 까는 데 쓰는 돈, 기업을 경영한다는 핑계로 자기들 배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가 경제위기 닥치면 받아가는 공적자금, 이런 저런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으로 고위층 인사들이 개념 없이 써 대고 있는 돈, 그런 걸 바로 '혈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굳이 22조 이상의 돈이 들어가게 될 4대강 사업을 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전 그런 돈이 훨씬 더 아깝습니다
.

 

사실 아이들이 먹는 밥, 그거 공짜 아닙니다. 왜 그걸 공짜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땅의 미래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려집니까? 연말에 새로 까는 보도블록, 쓰잘 데 없이 파헤쳐지는 4대강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받는다면, 그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비참한 일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걱정해 무상급식을 신청하지 않는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관용과 배포가 배부른 그대들에게는 없습니다.

 

청계천과 4대강 사업을 불도저식으로 추진한 토목 대통령께서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 우리가 남들에게 도움을 받았듯,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국격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좋습니다. 그것이 진정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혼자 가오 잡기 위해 그런 것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진정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면, 그래서 이제는 남을 도와도 될 수준이 되었다면 쪼잔하게 아이들 '''마음'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맙시다.

 

이번 정부에서 전국적 무상급식을 지원해줄 예산을 확보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면, 저는 생애 처음으로 명박이를 이명박 대통령 각하라고 불러줄 의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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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3. 08:30
 
 여러분 안녕하세요? 토끼고양이입니다. 신년 첫 포스팅에서 인사드려요. 올해는 싱글인 여러분 모두 좋은 인연 만나서 진하고 아름다운 연애 하시길 기원하고 커플인 분들은 지금 그 사랑 더욱더 열정적으로 깊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면서, 이것저것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실 것 같아요. 게다가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면서, 점점 연애에 대해서 주저하게 되는 부분들도 많아지실 것 같아요.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따지게 되는 것도 많아지고요? 

 그러면서 우리는 연애라는 것이 가지는 가장 순수한 본질에 대해 잊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본질만으로는 현실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따질 것은 따져야 합니다만, 그래도 본질이 전도된다면 그것은 이미 연애가 아닐 수도 있겠지요. 슬슬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는 때이기는 하나, 신년을 맞이하여 오늘은 본질에 한번 집중해 볼까 합니다.

 그렇다면 연애의 순수한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일단은 분명 진한 연애에서 맛볼 수 있는 것일 텐데요. 그런
 연애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 시를 빼 놓을수가 없습니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고, "진짜 연애"를 욕심내게 만드는, 문정희 시인의 <딸아 연애를 해라>를 소개합니다.


 
 
딸아, 연애를 해라!
                                                                                                                    - 문정희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있던 신사임당의 우아한 그 팔자를
 행여라도 부러워하거나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테지.
 혹은 장차 결혼을 생각하며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길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서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 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길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어우.. 옮기고 나니 시가 쏟아내는 에너지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 정도입니다. 군데군데는 너무 열정적이라서 어우 이건 too much하진 않나?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간혹 있네요 ㅎㅎ 신사임당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표현에 집착하기 보다는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것도 이 시의 액면 그대로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어른의 전 존재"로 한다는 "야성의 생명성"을 가진 "연애"에요. 그 부분은 이 시가 비록 "딸"에게 말하는 내용이나 "아들"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의 내용만으로도 이미 야성의 생명성을 가진 듯한 느낌이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연애란 얼마나 어려운지도 다시금 실감하게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주체로 온전히 살아가기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간 사람도, 살다 갈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마 인간은 절반 (혹은 그 이상을) 현실에 담그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야성의 생명성"이란 영적 체험에 가까운 경험인가 싶기도 하고요.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네요. 그런 성숙한 연애라면 분명, 일생의 사랑이 될 것 같기는 하다만, 과연 현재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만큼 어른이기는 할까요?

@_@ 어질어질.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안에 연애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요소는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은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이겠죠. 저 경지에 비록 이르지 못했더라도, 혹은 영영 못하더라도 다만 배우면 좋을 것은 저 주체적인 에너지가 아닐까요? 비록 온전하지 않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용감하게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시 한번 바라겠습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