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1. 20:25


좋은 선배란 무엇일까요. 이 말에 답하기 전에 하나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의 기준이 있으니까요.

 

요즘 친구들에게 '좋은 선배' 란 보통 이런 것입니다.

 

 

밥과 술을 잘 사주고,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으면서도,

선배의 짬밥과 경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줬으면 하고,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며,

되도록 자기들에 맞춰주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준다고 잘 따르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선배들을 갈구했습니다.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욕하지 않고, 일이나 공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만나서 내 돈 쓸 일 없고, 그러면서도 간섭 안 하는 선배. 좋지 않은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런 선배들은 기억 속에서 흐릿합니다.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소위 말하는 '대세'란, 물과 기름처럼 혹은 비켜가는 돌팔매처럼 서로 섞이거나 충돌 하지않고, 필요할 때만 연합하는 '쿨'함을 추구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쿨한 것을 추구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선배를 이용하게 됩니다. 생각 없는 선배들은 대세에 맞춰서, 돈을 뜯기고, 지식과 경험을 뜯깁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같이 후배들이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세월이 축적되면서 선배들이 느끼는 것은 묘한 상실감입니다.

 

어린 친구들에게 보상을 요구할수도 없고, 자기 시간과 돈, 경험만 뜯기는 묘한 싸이클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월과 함께 기대하지 않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둘 고학년이 되거나 졸업하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춥니다. 각자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겠지요. 그러나 예전보다 대학시절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그리움의 강도는 훨씬 적을 것입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철없는 신입생부터 졸업생까지,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쥐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선배의 잔소리와 간섭, 권위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선배가 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개념없는 후배들을 보고 한탄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일정 부분 이런 인류 공통의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을 냅니다.

 

후배들이 게으르고 건방지다고 욕하던 선배, 애정어린 강요를 하면서 밤새도록 술잔을 놓고 말싸움하던 선배, 술꼬장 부리는 것을 보면 멱살 잡아서라도 버릇을 고치려 했던 선배,

 

잘못하고도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으면 끝까지 비판하던 선배, 여자와 헤어졌을 때 무작정 위로하기보다는, 제 결핍과 나약함을 추궁하며 상대의 변절에만 분노하던 저에게 일침을 가하던 선배,

 

비싼 것을 사주지 못해도, 자기 책값과 식비를 아껴서 분식집 데려가던 선배.

 

그런 선배들과의 '부딪힘'이 없었다면, 그 부딪힘 때문에 분노하고 고민하지 않았다면, 저의 대학시절은 쿨하고 스트레스 없었을지는 몰라도, 지금 어디서든 막막했을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아무런 대책없이 착취 당하거나 저도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 무개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인간들을 한없이 미워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요즘은 그런 선배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비슷한 짓이라도 했다가는 후배들에게 욕을 먹기 십상이니까요. 욕 먹지 않고, 더러 보통 사이로 지내더라도, '어려운 선배'로 '찍힐' 것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마저 거기에 아무런 회의없이 서둘러 따라가면 안 됩니다.

 

자기 사업이나 회사일 때문에 부딪히는 사람들의 '쿨'함이 부러운가요. 명함을 수없이 주고받고, 아무리 자주 만나더라도 거기에는 부딪힘의 아픔과 그 아픔에 동반되는 상호간의 책임과 정이 부재하지 않는가요.

 

사람은, 아프게 만나야 됩니다. 추억과 정은 바로 거기서 생긴다고, 저는 배웠고, 경험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제게 추억과 교훈을 주었던 '좋은 선배'들이 많습니다. 그들과의 부딪힘이, 저는 그립고, 고맙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7. 08:30

 


 



 언젠가 '문과 여자와 공대 남자가 어울리는 이유'라는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어요. 어린 나이에는 내가 아는 세계를 나보다 잘 아는 '문과' 오빠들에게 끌리지만 내가 머리가 크고 눈이 넓어지게 되면 그 '오빠'의 한계가 언젠가는 드러나버리고 그러면 존경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대남자는? 내가 영원히 잘 모를 세계이므로 그가 어려운 공식과 원리를 설명하면 "어머 오빠 대단해"를 죽을 때까지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쉽게 그를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게되고(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많은 트러블이 없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문과 여자'의 심리에 무척 공감했습니다. 사실 많은 여자들이 배우자의 조건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꼽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 반드시 많이 아는 것만 존경할 부분이 되는 건 아니지만 - "잘 아는 남자"에게 가지는 호감은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 포스팅을 접했을 때는 특히 "문과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갈증같은 것이 무척 심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뜨끔했어요. 그럴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문과 남자를 만나려고 하는 생각이 틀린 걸까?

 그에 대한 답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닮은 사람이 좋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좋을까?

 서로 다른 사람이 끌린다는 말도 있고, 공통점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다기보다는 둘 다 맞는 얘기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둘 다 끌릴 수 있죠. 그 다른 점/닮은 점이 끌림의 이유일 수도 있고, 또 그와는 상관 없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우선, 여기서 닮은 것과 다른 것은 소소한 부분보다는 큰 특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은 "세계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 좋을까, 아니면 문과 여자와 이과 남자처럼 "그 세계를 모르지만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 좋을까요?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는? 

 
 제목 보셨겠지요?


 이것은 질문입니다.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