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6. 08:30


 제목에서부터 벌써 감을 잡으신 분들 있으실 지 모르겠네요? 오늘은 블로그 하나 추천하려고 합니다. 이 블로그는 우연히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요, 한 번 빠지게 되면 일상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그야말로 '농약같은' 매력을 가진 포스팅들이 그득합니다. 이 블로그는 "망한 연애담"을 제보받아서 블로그 주인께서 포스팅해주시는 방식의 블로그인데요, 아주 인기가 많아서 이제 책도 곧 나오게 된다고 하네요. 이 블로그가 생긴지 꽤 초반부터 (포스팅 갯수가 얼마 많지 않았을 때부터) 쭉 이 블로그의 발전을 지켜본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그야말로 '성공의 과정'을 보았습니다.

감자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지 (노령 싱글인을 위한 자기주도 연애 학습의 전당)
 http://www.holicatyou.com/category/%5B황망한소개팅%5D%5B황망한연애담%5D


 사실 이 블로그는 아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나영이'가 추구하는 것과는 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아주 재미있는데,(아 물론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아닌데 ㅠ_ㅠ..그게 최우선은 못 되고 있는 현실?!) 그건 블로그 주인장님인 홀리캣슈님의 감과 편집능력이 좋아서이기도 할 것이고, 또 여러 사람의 '경험담'이기 때문에 그 만큼 또 생생한 디테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등장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망한' 연애담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웃기기도 하면서 위로도 받게 되는 따뜻한 곳이지요.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혹은 '아, 나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구나!' 라면서요. 

 그리고 나영이가 20대 중후반의 시각 - 연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어느 정도의 의구심을 아직 가지고 있는 - 의 성격에 가깝다면 여기는 '꼬꼬마는 자제부탁'의 분위기로 기본 30대를 넘긴 분들이 주를 이루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연애관이나 원칙도 분명히 서 계신 편이고 또 더 많은 인생경험으로 더 농도짙은 *-_-*(어머)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것이 또 한 가지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간혹 20대의 사연도 소개 됩니다만은) 말하자면 오빠 형 언니 누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마음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들을 수 있는 곳이랄까요.


 그런데 사실, 이번에 이 블로그를 소개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최근의 어떤 한 포스팅 때문인데요, "흥한 연애담은 배알꼴려서 올리기 싫어요"라고 일갈하시며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을 보여주던 블로그가, 참여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슬슬 여러 입장의 사연들이 올라오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한 사연에서 '도대체 그 사람 뭐야? ㅠ_ㅠ'라고 여겼던 입장이 되보신 분들이 '사실 그건 이래서에요 ㅠ_ㅠ' 라고 "웃을 수 만은 없었던" 감상평을 제보하시곤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사연, "집착의 수렁" http://www.holicatyou.com/608 이었습니다.

 사연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이 제보하신 분이 단지 그런 행동을 했던 부분을 제외하면 실은 아주 멀쩡하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보통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만났네'라고 끝날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그러는 데도 원인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비단 '이상한'범주의 문제만이 아니라, 연애의 많은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의 원인이 어쩌면 근본적으로는 나한테 있는 걸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해도 '괴물같은 행동'은 나쁘죠. 그건 분명 괴물이고, 나쁜 거니까 그 상태대로 계속 있으면 안돼요. 그의 '괴물같은 행동'에 상처받는 우리도 물론 가여워요, 무시할 수 없는 피해에요. 하지만 그런 나쁜 행동을 하는 그 본인도 가엽습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 하게끔 되었다는 것이. 그리고 또 무서운 것은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면 누구라도, 그런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 나쁜 행동은 미워하되, 그 연약한 인간은 미워하지 말아야하는.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그래서인 것 같습니다.
 사실 분노하는 마음은 젊은이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저도 세상의 모든 부정한 것들에 분노하는 자가 행동할 수 있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사회문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계층엔 언제나 '학생'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때로, 그 분노가 향해야하는 대상을 정확히 인지할 만큼 젊은이들이 노련한가는 의문입니다. 게다가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들어왔을 때는 더욱, 그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나하는 우려도 가지게 되고요.

 그러니 참.
 알고 생각하고 또 생각할수록 인간사는 측은지심으로 귀결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그게 쉽지도 않고, 자칫하면 결국 내 상처는 치유할 바가 없어진다는 위험도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저 언제나처럼, 지향점은 거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사랑"하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2. 4. 08:30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됩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을 할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3학년들이 학교를 떠날 것이며, 그 빈자리는 새로운 1학년들이 채우게 될 것입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방학식, 졸업식, 입학식 행사도 이어지겠지요. 


저는 이런 의식들이 싫습니다. 이런 행사는 언제나 국민의례라는 충성의 서약으로 시작을 합니다. 행사가 시작하면 저는 슬그머니 대열의 맨 뒤로 빠집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제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조국’과 ‘민족’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저는 어설픈 ‘불복종’을 감행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는 강의석 씨처럼 국군의 날에 알몸 시위를 할 배짱도, 총 대신 감옥을 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결연한 용기도 없습니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응시해야 하는 의식이 사무치게 싫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끄럽기만 한, 이제는 수치와 모멸의 감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 조국의 상징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는 맹세의 주문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국가인권위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을 권고하는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도, 정작 학교 현장에서 전체조회는 사라지지 않으며, 국민의례와 같은 폭력적인 의식에 대해서는 왜 아직도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을까요. 왜 우리 아이들은 적지 않은 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을 ‘애자’라고 부르고, 동성애자를 ‘변태’로 느끼며, 독도 문제와 같은 이슈에는 어른 세대 이상으로 폭발하면서 ‘잠재적인 우익’으로, ‘잠재적인 마초’로 성장해가고 있는 것일까요.


국가주의, 남성주의, 그리고 그것들이 뭉친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로 이 사회의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의 양식’으로 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았습니다. 전체주의가 ‘삶의 양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모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 안락을 박탈당했을 때의 공포’로 꽁꽁 묶여버립니다. 따라서 아주 작은 일탈도 자신의 전 존재를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고, 모두의 앞에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뻔한 길’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은 ‘안락한 삶’을 향해 나 있는 반복된 루트를, 이를테면 학교와 학원, 텔레비전과 판타지 소설과 컴퓨터 게임을 짓무르도록 답습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그 나이에서만 겪을 수 있는 ‘구체적 경험의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욕망이 구축한 시스템의 상자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진정한 교섭을 이룰 수 없었고, 부모 세대가 욕망하는 것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학교 교육과 어른 세대가 가르치려는 가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본능적인 회의의 대상이 됩니다. ‘경험’이 없는데 어찌 그 '경험의 가치'가 자리 잡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가치의 니힐리즘,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존재감 확인,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불쌍합니다.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과 세계에 대한 그들 나름의 ‘절망’이 느껴집니다. 자유와 일탈의 모든 가능성을 거세당한 채, 희망도 없이, 오로지 ‘안락한 삶’만을 위해 학원에서 학원으로, 입시에서 입시로, 감시와 처벌, 통제과 규율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한 살 두 살 나이만 키워온 아이들의 황폐한 내면이 느껴집니다. 그들은 존재감을 갈구하는, 불안하고 가련한 어린 짐승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타자에 대한 관용과 힘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으로 육박해오는 것들에 열광합니다. 학교에서 하는 전체 조회는 그토록 지겨워하고, 국민의례의 태극기에는 무덤덤한 아이들이 월드컵 공간에서는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독도를 제 땅이라 우기는 ‘쪽발이’들과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 남성주의를 피부로 느끼고, 점점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아이들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기 원하는 지성이 있다면, 그 노력은 단연코 이데올로기 차원의 투쟁이 아니라 아이들을 ‘자연’으로, ‘경험’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청산에 살고 싶다 말하며, 홍진에 묻힌 분네들을 조롱했으니까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