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3. 10:00




수능을 앞두고 학교가 자습 체제로 들어선 덕에 수업도 절반으로 줄었고, 학교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몸은 훨씬 더 피로합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있어서 그럴까요. 요즘 매일 생활기록부와 에듀팟을 보고 살았더니 이젠 글자만 봐도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 인터넷 창을 띄우고 이것저것을 뒤적이다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성교제 하다가 걸리면 퇴학'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한 시민단체에서 전국 주요 지역에 있는 354개의 공학고등학교를 조사해보니, 81%에 달하는 286개 학교가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교칙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는 이성교제로 세 번 적발될 경우에는 퇴학을 당한다는 규정이 있어 최근 남학생은 전학을 하고 여학생은 자퇴를 한 데에서 발단된 기사였습니다.

 

사회가 워낙에 많은 19금을 강요해서 그럴까요. 청소년들의 연애를 금기시하는 문화는 어디에서부터 나온 지 궁금합니다. 꼬장꼬장한 어르신들이 청소년의 연애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16세에 잠자리를 같이 한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이라 부르는 그분들의 생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요즘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여소(여자소개)'를 통해 이성친구를 만나고, 금세 쌍무적 계약관계를 맺습니다. 같은 재단 산하에 있는 운동장 건너편 **여고에 가장 많은 여친님들이 계신 것 같고, **실고에도 꽤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여고과 **여고에도 상당수의 형수님과 제수씨들이 있는 듯합니다. 아, 공학인 **사대부고는 자급자족이 가능한지 우리 학교 아이들과는 별다른 계약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하네요.

 

거리에서 종종 청소년 커플을 만납니다. 교복을 입고 손을 잡은 채 그들은 친구나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을 마주쳐도 손을 놓지 않고, 더 밝게 방긋 웃으며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여자친구예요. 예쁘죠?

 

그래 안녕 ^^ (마..망할 것들)

 

 

저는 청소년 때 이성교제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커플들을 만나면 부러운 생각부터 듭니다. 중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찌질이’였던 탓에 연락하는 여학생이 딱히 없었고, 그 후에는 남고를 다녔기에 주위에 이성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고의 축제에 가본 적도 있고, 학원에서 여학생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청소년들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생소한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 커플들을 만나면서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제게 그런 경험이 없었고, 또 지금 솔로여서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고, 맑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차서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갈수록 계산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교복 색깔이 이성친구를 만나는 데 큰 장애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만 되어도 학교를 따지고, 사회인이 되면 직장을 따지고, 연봉을 따지고, 집안을 따지게 됩니다. 사랑은 증발하고 온갖 계산만 남는 무미건조한 관계가 됩니다. 이 사람을 가장 사랑해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기에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에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고 나랑 조건이 맞으니 상호 필요에 의해 결혼하는, 일종의 계약관계로 결혼을 하는 것이 2011년의 결혼문화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사랑은 얼마나 순수한가요. 그들은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에게 온전히 빠져들어 아끼고, 사랑합니다. 이보다 맑고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요. 오히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근데 어른들은 왜 청소년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할까요? 이것은 일선 학교에 만연한 엄격한 두발규제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저희 **고등학교는 학생인권에 있어서 굉장히 민주적인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 두발이나 복장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허용하는 학교는 전국에도 몇 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학생부 선생님들과 학생회 지도부가 아침마다 교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학생회 지도부 네 명이 짜고 있는 박스 안을 통과해야 했으며, 복장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명찰이나 뱃지가 없거나,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어 손가락 위로 삐져나오는 것이 있으면 가차 없이 삭발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에 학생부장이셨던 선생님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학생들은 머리가 길면 딴 생각을 해요.

 

근데 머리가 짧아도 딴 생각은 언제나 듭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청소년의 사랑이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동이라 여겨질 것입니다. 청소년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기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청소년기의 공부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인식, 즉 학력과 학벌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더욱 들어가면 세상은 전쟁터이고, 다른 모두와 경쟁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하나로 세상을 고착시키고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비루하고 단촐한 사고인가요.

 

대학 교직과정에서 배웠던 교육과정의 종류 중에는 잠재적 교육과정(latent curriculum)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육기관에서 교육 대상자에게 의도적이고 공식적으로 전달하려는 공식적 교육과정과는 달리, 잠재적 교육과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상자들이 습득하게 되는 교육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선생님의 체벌을 통해 배우는 폭력 같은 것을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공식적 교육과정 못지않게, 혹은 더욱 교육의 대상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이 잠재적 교육과정입니다. 지금의 제게 고등학교 때 분명히 배웠던 수열이나 극한에 대한 수학 문제를 가져온다면 전혀 풀 수가 없지만, 당시 선생님들의 모범적인, 혹은 실망스러운 행동들에 대해서는 줄줄이 읊을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랑은 그들에게 강하게 작용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를 사랑할 때보다 삶의 동기가, 생의 에너지가 충만한 때가 있는 지를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떨리는 학생은 수업시간에 잠시 딴 생각은 할지언정 꾸벅꾸벅 졸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의 에너지가 공부에 이어진다면 꼰대들이 보기에도 그것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남녀 간의 거리' 등을 설정한 교칙을 만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교칙을 만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청소년이 '학생'이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머물기를 바랍니다.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 요소들을 이유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영달을 위한, 망할 성과주의도 빼먹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학교는 세상과 단절된 채 세상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랑은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 통제권한이 있는 위치에 앉은 사람들은 정작 그들이 통제해야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통제권한 밖에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자'라면 어떻게 청소년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통제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는 어른들보단 낫잖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0. 09:58

안녕하세요. 일요일을 맡고 있는 '학교에 안 갔어'의 스릉입니다. 오늘 '한화이글스'님의 휴재를 틈타 하루만 코너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야구를 처음 본 것이 93년 한국시리즈였으니, 나름대로 20년 가까이 야구를 좋아하고 있는 셈인데요. 야구를 보는 것으로 부족해 직접 야구를 하기도 하고, 야구 블로그도 운영하고, 야구게임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야구가 왜 재미있는지, 왜 야구를 좋아하는지, 한 번 써볼까 합니다.





저는 야구 오타쿠입니다. 저는 야구가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이며, 야구에는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구에는 우리 인생처럼 수많은 변곡점들이 있습니다. 1루, 2루, 3루의 먼 여정을 거쳐 홈(home)에 돌아와야 점수가 나는 야구는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공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종목은 야구가 유일하기도 합니다.



 


야구는 인간적인 스포츠입니다. 야구에서는 03~04시즌 EPL의 아스날처럼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98~99시즌 KBL의 동양 오리온스처럼 32연패를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야구는 아무리 잘해봐야 승률 7할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아무리 못해도 승률 3할 밑으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최약체의 팀이라 해도 연패를 끊어줄 에이스가 한 명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인체의 바이오리듬처럼 싸이클이 있어서, 연승을 하고 나면 연패에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위기를 극복해내면 반드시 찬스가 오고, 찬스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다시 위기가 찾아옵니다. 무사만루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 팀은 그 다음 수비 때 백에 칠십 정도는 점수를 잃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수비를 보여준 선수는 그 다음 공격 때 좋은 타격을 보여주게 됩니다.



 

야구는 평등한 스포츠입니다. 야구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등 떠밀려 끝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야구에는 포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제 겨우 서른이 된 젊은 청년이지만, 프로야구사를 되짚어보면 9회말 투아웃에서 6점차를 역전한 경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명언이 있기도 합니다. 선발 라인업에 들어간 타자는 누구나 세 번 이상의 타석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한 경기에 홈런을 열 개를 친 팀이든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한 팀이든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내야만 경기가 끝나는 것은 똑같습니다. 야구는 김선빈처럼 170cm이 안 되는 선수도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이며, 이대호처럼 130kg이 넘는 몸으로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는 손가락이 한 개 없는 투수도 있었습니다. 신체조건의 제약이 적다는 점에서 야구는 정직하고 평등한 스포츠입니다.



 

야구는 겸손한 스포츠입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야구는 너무 정적이고 지루해서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야구 선수가 진정 땀과 눈물을 쏟아내는 곳은 그라운드가 아니라 연습장입니다. 야구를 해본 사람들은 야구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평범한 플라이 볼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입니다. 야구선수들은 눈으로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타구의 비거리를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딱 소리를 듣고서 낙구 지점을 예측해냅니다. 보통의 연습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닙니다. 야구선수들은 시속 140km가 넘어가는 빠른 공을, 그것도 홈플레이트 앞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며 꿈틀거리는 공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쳐냅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야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느린 경기라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투수가 던지는 볼 하나하나에는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그 수싸움을 보는 것이 진정한 야구의 묘미입니다. 위기와 찬스 상황에서는 그 어떤 종목보다 긴박감이 넘치는 것이 야구라는 스포츠입니다. 야구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진정한 두뇌 플레이라고 할 만한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저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과 야구를 볼 때면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어서 쉴 새 없이 수다를 떱니다.






장명부의 한 시즌 30승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송진우의 통산 200승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것처럼, 야구는 한 시즌에 얼마나 반짝했느냐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꾸준했느냐가 더 인정받는 스포츠입니다. 양준혁이 나이 마흔 살에도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던 것이 가능한 스포츠입니다. 15년 전에 반짝했다 사라진 신인왕이 재활에 성공해 다시 MVP급 활약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입니다. 인생을 담은 스포츠, 정직하고 평등한 스포츠, 감동을 주는 스포츠. 그래서 저는 야구에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The saddest day of the year is the day baseball season ends"
-Thomas Charles Lasorda-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0. 09:11


 이름 : 션! (한국이름 노승환)
나이 : 1972년 10월 10일생
직업 : YG 지누션의 멤버, 힙합 가수!
만남 : 동네 교회 2층 예배당

여러분이 꿈꾸는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꾸려나갈 책임감이 강하고 유능한 사람, 늘 도전적인 모험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줄 자상하고 사려깊은 사람… 각자 다른 이상형을 꿈꾸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동안 나름대로 여러 생각을 해봤는데요. 얼마 전, 새로운 롤모델을 한 분 만났습니다. 바로 기부천사, 행복전도사, 그리고 국민남편(?)이라 불리는 입니다.


아마 션의 특강을 들어보신 분들도 제법 계실 것 같아요. (빡빡한 스케줄!) 하지만 저는 이번이 첫번째 강연이었기 때문에 무척 감명받고 많이 배웠어요. 동네 교회에서 준비한 특별한 강연, 션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래저래 크리스챤을 창피하게 만드는 일부 목사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분이죠? (하아..) 강연에서 션 씨는 연애, 결혼, 출산, 육아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릴게요!

1. 사랑해, 축복해


션 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을 향해 두 마디를 건넵니다. "하음아! 사랑해, 축복해!" "하랑아! 사랑해, 축복해!" 그냥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맘을 다해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요.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곁에 앉은 이들을 향해 그 두마디를 전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매일매일 사랑과 축복을 전하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하음이가 급하게 동생 하랑이의 방으로 뛰어가 옹알옹알 동생에게 말해줬대요. "사앙해, 추보캐!" 션 씨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진심을 담은 마음이 어떻게 커져가는지, 이어지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저도 처음 보는 옆자리 아주머니께 그 말씀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언젠가 제가 엄마가 된다면 꼭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에요.

2. 돌잡이로 무엇을 잡았나요?


첫째 하음이가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 1살이 되자 돌잔치에 대한 고민에 빠진 션-정혜영 부부. 즐겁고 행복한 돌잔치이긴 하지만, 막상 주인공인 아이와 엄마는 너무 힘들기도 하죠. 먹고 자고 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한참 낯을 가릴 아이에게 낯선 얼굴이 들이닥치고 무엇인가를 잡으라고 하고 하니까요. 아이를 달래는 엄마도 진이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구요. 부부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아이의 돌잔치 비용과 도우미 아주머니를 모시는 데 드는 비용을 합쳐 어린이 병원에 하음이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음이의 이름으로 몸이 불편했던 아이들은 다시 희망을 얻었죠. 동생들도 같은 돌잔치를 했다고 해요. 엄마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특별한 추억이자 더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돌잡이로 잡은 것은, 이웃의 손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가 긴 여운을 주더군요.

3. 떠나고 싶지 않은 결혼식, 와 보셨나요?


션 씨는 어린 시절을 괌에서 보내서 미국문화에 익숙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청첩장에 꼭 누구누구의 장녀 누구, 누구누구의 차남 누구 식으로 부모님의 성함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와, 역시 동방예의지국답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난 후, 그보다는 하객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고 보는 한국식 사고방식도 깨닫게 되구요. 외국에서는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만큼 한국에서의 결혼은 복잡하죠. 특히 혼수, 예단, 그리고 축의금이 더더욱.

평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인데, 진심어린 축하와 축복이 아니라 인사치레로 가득찬 식당처럼 변질되는 것이 걱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션 씨는 다소 충격적인(!) 결단을 내리는데요. 바로 축의금을 받지 않기로 한거예요. 하객도 단 200명만 초대했구요. 모든 준비는 기도가 함께 했고, 신랑과 신부가 나누어 직접 했다고 해요.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했고, 초대된 하객들 모두 진심을 다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떠나기 싫은 결혼식은 처음이었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 해요. 비행기에서 하는 결혼식, 수중웨딩 같은 각종 결혼식이 많지만 '떠나기 싫은 결혼식'이야말로 so special한 것 같습니다.

4. 나누기, 더하기, 곱하기!


행복한 결혼식을 마치고 션 씨는 정혜영 씨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만큼, 우리만 누리지 말고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살자" 그러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매일 만원씩, 조금씩 모아서 이웃들을 위해 쓰면 어떨까?" 그 날로 매일 만원씩 모아 결혼 기념일마다 무료급식소 '밥퍼'에 기부를 합니다. 그렇게 벌써 몇년째, 하루에 만원이던 돈이 천만원이 넘는 큰 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작지만 진심으로 모은 돈은 이웃의 행복을 배의 배로 키웠습니다.

5. 404명의 아빠가 되었어요.


하음이, 하랑이, 하율이, 하엘이. 천사같은 4남매의 아빠인 션 씨. 하지만 그에게는 더 많은 자녀가 있다는데! 컴패션을 통해 만난 필리핀과 아이티의 아이들 200명, 우리나라의 아이들 100명, 그리고 북한 어린이 100명까지. 정말 대단한 대가족이죠? 션 씨가 꿈꾸는 세상은 사랑이 가득한, 나눔의 공간입니다. 특히 북한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북녘의 어린이들을 양육하며, 후에 통일이 왔을 때에도 '사랑'이란 큰 틀 안에서 반갑게 만나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꿈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요즘 어린이들은 '통일'에 대해 잘 모르니 더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해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정도면 여러분께 살짝 소개해드리는 정도면 괜찮겠죠? 두시간 동안 특유의 선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열정적으로 강의해준 션 씨에게도 감사를 전하면서- 여러분도 더 크고 따뜻한 행복을 꿈꾸시기를 감히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저도 더 좋은 사람, 이웃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봐요. 모두 행복해져요, 우리! 사랑해, 축복해! 

* 모든 사진의 출처는 션 님의 미니홈피 입니다. http://www.cyworld.com/sean101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9. 08:30



















0. 이 리뷰엔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스포일러가 왕창듬뿍 들어있습니다. 경고 했어요.ㅋㅋ






1. 일단 감독의 전작인 '게드전기'보단 재밌게 보았습니다.






2.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묘한 인연으로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열여섯 소녀 우미와 그녀의 1년 선배인 슌의 사랑이야기, 또다른 하나는 그들이 재학중인 고등학교의 오래된 동아리 건물, '까르티에 라탱'의 철거를 막으려는 학생들의 노력이지요. 두 이야기 모두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 혹은 영화로 무뎌진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음을 자극하기엔 참으로 미지근하고 무난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슌의 대사를 통해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미와 슌 사이의 핵심적인 갈등 요소인(갈등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게.. 얘네는 이것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아요.) '알고보니 남매' 떡밥은 통속적 멜로드라마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소재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이런 낡은 떡밥이 들어있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를 제작한 것은, 지나치게 20대 취향에만 맞춰져 있는 최근의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원작에는 없는 까르티에 라탱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과거의 낭만을 되찾자'라는 메세지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분위기와 남매 떡밥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일 것입니다. 흑흑 우리가 남매였다니, 그럴 리가 없어!!












자신들이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슌의 이야기에 놀란 우미.
생김새도 참 많이 닮은 두 사람이지만.. 사실은..






3. 우미와 슌의 사랑 이야기는 결국 그들의 부모 세대 사람들의 관계를 되짚어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는 '뿌리찾기'와 같습니다. 까르티에 라탱 보존운동도 결국 학교문화 기저에 깔려있는 인문학적 뿌리를 지키려는 움직임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구조는 일본사회 전체의 사상적 회복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본에는 분명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서구 과학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받아들였다는 자부심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국주의의 광풍이 전국을 뒤덮어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으니, 19-20세기의 일본에서 꽃피었던 인본주의적 분위기를 회복하고 자국의 자존심을 다시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열망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60년대 초반에는 순수한 정신문화 부흥의 의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나, 우경화 일로를 걷고 있는 최근의 일본에서 이러한 작품이 다시 나왔다는 것은 작품에 그것 외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올해 3월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으로 흐트러진 이른바 '일본정신'을 재건하고 일본인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일본정신'이라는 것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4. 이 영화를 마냥 르네상스에 대한 동경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우미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일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숙집 일을 거들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미는, 매일 아침마다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안전한 항해를 기원합니다'라는 메세지가 담긴 깃발을 올립니다. 항해 어쩌고 하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우미의 아버지는 선원이었어요. 우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였던 한국으로 가는 물자수송선에 탔다가 그 배가 기뢰를 맞아 침몰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요.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우미 아버지 세대의 옛 이야기를 보았을 때 우미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해군 출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나 작품에서 묘사되는 그는 그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에서 희생된 피해자일 뿐이지요.
   작품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은 얄팍하디 얄팍합니다. 우미 아버지의 죽음은 주인공의 안타까운 처지와 그들 사이의 사랑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제공하는 밑밥일 뿐, 그 자체가 이야기에 중요한 축이 되진 않아요. 재밌는 것은 이러한 얄팍함 덕분에(?) 이 작품을 우파적 메세지를 담은 작품이 아닌, 일본의 우파 정부를 비판하는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야자키 고로는 그들이 회복하고자 하는 '과거'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해석과 그에 따른 갈등에서부터 적당히 발을 빼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깊이 없음'은 의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5.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것은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일본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공동체 정신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 인본주의적 가치인지.. 전체주의로의 회귀인지는 일부러 깊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을 시원스레 말아먹었던 미야자키 고로의 입장에서는 관객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겠지요. 비록 이 조심성 때문에 얄팍한 작품이 나왔지만 말입니다. 








감독인 미야자키 고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입니다.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 미소네요. 아버지 등쌀 때문에









6.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누군가가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에는 왠지 노동하는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경우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아예 1년간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임무를 띤 꼬마마녀가 주인공이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영문도 모른채 고된 목욕탕 일을 해야 했죠. 이 작품의 주인공인 우미 역시 하숙집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혼자 도맡아 합니다. 아직 열여섯밖에 안된 학생인데 식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요..우미가 부엌일을 도맡아하는 설정 덕분에 아기자기한 그릇들을 구경하고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인데.. 저는 지브리 작품에 나오는 계란 후라이가 그렇게 먹음직스럽게 보일 수가 없어요ㅋㅋ 노른자가 반짝반짝 탱탱한 게..인물들이 그걸 한 젓가락에 집어서 후르륵 삼키죠. 아유 어쩜 그렇게 맛나게 먹을까요? 응?ㅋㅋㅋ








저 각 잡힌 상차림을 보라. 여기가 하숙집이야 군대야
아아 저 계란 후라이 아아








   
7. 아무튼 별 생각없이 우미와 슌의 풋풋하다 못해 밍숭밍숭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은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어느정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홍보 팜플렛에는 이 작품이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사하는 첫번째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 사실 첫번째는 아니지 않나요? 그 전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순수한 러브 스토리는 조금씩 선보여왔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강조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폭풍의 언덕' 같은 격정적인 치정극을 내놓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브리와 치정극이라.. 정말 안어울리는 두 단어네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8. 21:26

여러분 모두를 위한 공간 '여러분'
새로운 에디터 '스릉'님이 오셨어요!
앞으로 일요일을 책임지실거예요 든든합니다!

스릉님의 '학교에 안갔어'에서는
'교육'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릴게요!

스릉님 웰컴특집으로 지식채널e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역시나 스압이 예상되니 손가락에 힘주시고 시작할게요!

제목 : 우리들의 뜨거운 고백 
방송일 : 2011. 10. 17.


선생님! 이런 것도 ‘시’예요..? 물론! 그런데, 세 번만 더 고쳐볼까?




원출처 : http://home.ebs.co.kr/jisike/content_mov_detail.jsp?command=vod&chk=L&client_id=jisike&menu_seq=1&out_cp=ebs&enc_seq=30902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8. 08:30


 유명한 미드 "Sex and the City"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 그 연인을 소개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연인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연인과의 관계는 유지하지만 끝끝내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큰 그림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결국 이 에피소드는 숨겨진 정부취급을 받던 이 사람의 연인이 자신을 당당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이 사람과 헤어지면서(정작 이 사람은 그 때 연인과 공개된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였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나쁜 일일까요?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과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은 나쁜 일일까요?

 누구나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씩은 고민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할 때 '내가 너무 속물인가?'라며 조심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속물'이 뭔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속물'을 '나쁜 것'으로 바꿔본다면 저는 "No"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결혼의 목적"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관계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중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의 높은 평가'라면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죠. (그게 연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나에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면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오히려 옳은 선택이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외부조건 때문에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해 관계를 포기하려는 자신을 속물이라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계가 이미 정해진(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숨겨진 관계'를 갖는 것도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관계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이 없다면 말이지요.(하지만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권하지는 않고 싶습니다. 그게 '관계'라면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요.) 


                                              샬롯도 처음 해리를 만났을 때, '숨겨진 관계'를 원했지만
                                                       결국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보세요.
 

 하지만 그 '숨겨진 관계'의 정체를 한 쪽만 알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A는 B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B는 그건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안되고, A가 싫은 건 아니기 때문에 A가 미래가 있는 관계를 원하는 걸 알면서도 '숨겨진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건 나쁩니다.  이 관계에서 A는 속았으니까요.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여러 요소가 훨씬 애매할 거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A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B가 모를 수도 있고 그걸 지레짐작하는 것이 오버일 수도 있고요. A가 결혼하자고 말한 것도 아닌데, 너랑은 결혼 못할거 같아, 라면서 헤어지는 건 잘하는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고요.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럼 둘 다 괜찮다면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처럼 이용하는 건 괜찮은가? 라는 윤리적인 논쟁의 문제가 있을수도 있고요.
 
 칸트라면 안된다고 하고 공리주의라면 된다고 할 만한 '정의란 무엇인가'식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것은 무척 화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자신의 의지대로 할 기회가 있었는데, 누군가 사실을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기회를 빼앗겨버렸다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상처받게 되었다면 그건 나쁜 일이죠. 기회를 빼앗은 사람이 분명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만약 제가 다소 '속물적'인가? 라고 고민할만한 이유로 누군가와 관계에서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데 그 생각이 확고하다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미래를 함께할 기약은 앞으로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를 놓치기 싫어서 그 관계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그 상황을 상대방에게 알리겠어요. (물론 저라면... 그러고 싶어도 차라리 헤어지는 걸 선택할테지만요) 그게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달가운 소식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만약 제가 상대방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 선택은 제 몫이겠지요.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꽤나 분명합니다.ㅎ 칸트적이면서 공리주의적인 이유지요.  
 저는 목적으로 대우하고 대우받는 것이 좋거든요.



by 토끼고양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명제 뿐이라고 생각. 태클 환영. 댓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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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7. 12:10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ㅠㅠ

오늘 월요일의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 코너를 부득이하게 쉬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돌아 오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6. 10:00

 




바람조차 숨을 멈춘 고요한 밤

붉은 벽돌상자에서 쏟아지는 학생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그들의 어깨
무거운 책가방에 짓눌린다

지치고 가엾은 어린 영혼들
입시라는 벽에 부딪히고
푹 숙인 고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숨과 눈물 뿐이다


자유를 찾아 떠난 아이들
낙오자로 지탄받고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는 자
모범생으로 칭찬받는다


오늘도 칠판 한 귀퉁이에서
자꾸만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대학이라는 포장지가
우릴 멋지게 싸주기만을 기다린다



詩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위의 글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감정에 북받쳐 쓴 것입니다. 저렇게 공부를 싫어하고, 학교 교육을 불신했던 제가 지금은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실의 풍경은 비슷합니다.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고, 그 학생들조차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라는 답을 들은 뒤에, 그럼 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면 멈칫합니다.
 


몇 년 전 수능시험에서의 부정행위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대학 진학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고, 학생들의 신분을 결정합니다. 어느 대학을 나오느냐 하는 것은 인생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이 경쟁에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의 본래 의미인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은 사라지고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한 경쟁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행위가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수히 다양합니다.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다양한 소질을 다양하게 계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한 가지 방식으로 줄을 세우고 모든 학생들이 시험 선수가 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부조리와 경쟁력 저하의 원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시험선수가 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학서열화, 고교등급제, 본고사부활, 기여입학제 등을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지나온 역사를 볼 때, 시장에서 나오는 결과란 다양성이 아닌 독점이었습니다. 교육기회의 독점이고, 사교육의 독점이고, 학벌의 독점이고, 그것이 곧 부의 독점이 되며 신분의 독점이 되어왔습니다. 경쟁이란 모두가 대등한 상황에서, 독점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다양성과 역동성을 갖고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학교들은 서열화되어 있지만, 서울대학교와 강원대학교 사이에는 아무런 경쟁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경쟁을 통해서 교육의 효율성을 창출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처럼 많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처럼 대학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없습니다. 그것은 경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쟁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쟁이 아닌, 획일적인 시험 경쟁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은, 부모님들은, 어른들은, 주어진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 기능적인 사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십니다.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서열화 기준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를 향하여 매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배울 기회를 놓칩니다. '자아 발견' 내지 '자아 재발견'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수가 높아 사회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거나 부모님의 칭찬을 받는 순간 우리는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역시 나는 위대해!'하고 자위하며 '가짜 자아'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내면은 공허해집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은 부모나 가족, 회사가 원하는 모습이지 결코 진정으로 내면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릴 적부터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면이 말하는 대로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율적이며 책임성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모두를 존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돈이나 지위, 명예나 권력이라는 외적 잣대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기에 그 기준을 잣대로 하는 차별은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개성과 소질들이 더불어 존재하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 출발점은 '자아 발견'일 것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의 3주체라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세 주체 중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다들 울상이고, 죽을 맛이라고 말합니다. 교실 안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은, 교문을 나가는 순간 표정이 밝아집니다. 가끔은 제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학교가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날을 기다립니다.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속의 삶을 소망합니다. 아이들의 생활공간이, 교육이, 학교 안으로 한정되지 않고, 살아가는 터전 전체로 이루어지는 날들을 그려 보기도 합니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살며 그때그때 행복한 삶을 희망합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더 나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5. 08:30



안녕하세요, miss톡 입니다!
오늘은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친숙할 수도 있는 홍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작년 12월, 처음으로 홍콩을 찾았던 miss톡은 홍콩에 홀딱 반해버렸다죠.
영화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운치있는 골목길, 트램, 고층빌딩, 북적거리는 사람들, 밤새 반짝거리는 거리..
그래서 채 5개월도 지나지 않아 한번 더 찾게 되었는데 여전히 멋진 곳이더군요.

홍콩하면 무조건 쇼핑!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제가 느꼈던 홍콩은 쇼핑도 쇼핑이지만 도시 자체로 참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홍콩은 워낙에 찾는 분들이 많아서 겨우 두번 다녀온 miss톡이 이걸해라 저걸해라 말하기에는 초큼 뻘쭘하지만요,
그래도 제가 느낀 홍콩의 매력을 함께 나눠볼래요 :) 

홍콩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일 best 3 입니다!

 

1) 놓칠 수 없는 홍콩의 밤! 란콰이펑을 갈까, 넛츠포드 테라스를 갈까?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밤을 홍콩섬에서 보낼 계획이라면 란콰이펑(Lan Kwai Fong)을,
구룡반도에서 보낼 계획이라면 넛츠포드 테라스(Knutsford Terrace)를 추천할게요.



란콰이펑은 홍콩섬 센트럴에 위치해있는 나이트 라이프의 중심지로,
홍콩의 핫 플레이스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에요.
금요일 밤, 토요일 밤이면 멋지게 드레스업한 서양인들도 가득가득 하답니다.
맨 처음 아무생각 없이 전형적인 관광객 차림으로 이 곳에 들렸던 저는 창피해서 어디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이 점 참고하시고 꼭 예쁘게 차려입고 홍콩의 밤을 즐기시길 바래요.     



그리고 넛츠포드 테라스는 구룡반도 침사추이에 있는 작은 거리에요.
다양한 노천펍과 레스토랑들이 거리에 쭈욱 늘어져있답니다.
그 번잡한 침사추이 한가운데 이렇게 오붓한 공간이 있는줄은 몰랐어요.
거의 모든 가게들이 해피아워를 적용하고 있으니 오후시간에 와서 칵테일 한잔하는 것도 좋을듯해요.
 


2) 퍼시픽 커피 컴퍼니에서 시원한 망고매니아 한잔! 


홍콩에서 제일 유명한 음료 중 하나가 바로 허유산의 망고주스인데요,
모두가 다 마시는 허유산 망고주스 말고도 추천해주고 싶은 음료가 또 하나 있어요.
바로 퍼시픽 커피 컴퍼니(Pacific Coffee Company)의 망고매니아라는 이름의 망고스무디입니다.



퍼시픽 커피 컴퍼니는 홍콩 로컬브랜드 카페인데요,
홍콩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 보는 것 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다른 스무디도 맛있지만, 망고가 풍부한 홍콩답게 망고스무디의 맛이 훌륭합니다.  
게다가 피자나 머핀같은 델리류도 꽤 맛있고 저렴한 편이니 한끼 정도는 이곳에서 해결하는 것도 좋을 듯 해요.



홍콩 공항에도 퍼시픽 커피 컴퍼니가 출국게이트에 하나, 입국게이트에 하나 있으니 여기서 맛볼 수도 있구요.
퍼시픽 커피 컴퍼니의 망고매니아, 더운 여름날 최고랍니다.



3) 2층 버스를 타고 스탠리까지 가는 한시간의 여정

홍콩에서는 쇼핑과 나이트라이프만 즐길 수 있다?  
절대 아니지요-

miss톡이 가장 추천하고싶은 곳은 홍콩속의 작은유럽이라고 불리는 스탠리(Stanley)입니다. 
센트럴 익스체인지 스퀘어에서 탑승할 경우 6, 6X, 6A, 260번 등의 버스가 스탠리로 향합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버스 2층의 오른쪽 자리를 사수하라!' 입니다.
운이 좋아서 제일 앞자리까지 차지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스탠리로 향하는 약 한시간의 여정은 절대 놓쳐선 안되는 순간이에요.
꼬불꼬불한 홍콩 도심의 골목길을 지나,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산이 보이고, 또 바다가 보이고..
침사추이나 센트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새로운 홍콩이 펼쳐지거든요.

 


일단 스탠리에 도착해서는 바다가 보이는 노천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하시구요,
스탠리 마켓에서는 악세사리, 린넨, 캐시미어 등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을 구경할 수도 있어요.
홍콩 시내보다 더 나은 물건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많으니 굳이 망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서양인들의 비율이 70~80%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도 물씬 나는 곳이에요. 

특히 가족끼리 홍콩여행을 갔을때 추천하고 싶은 best 여행루트랍니다. 



* * *

혹시나 지금-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12월의 홍콩, 강력 추천이에요!
모든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아주 멋진데다가
세일기간이 시작되는 시기라서 쇼핑하기에도 아주 좋거든요.
날씨도 우리나라의 가을날씨 정도로 돌아다니기에 딱이구요.
올 연말, 홍콩에서 보내는 따뜻한 겨울 어떠신가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13. 08:30

나는 4번타자다. 곧 타석에 올라서게 된다.
어쩌다 이런 타석에 서게 됐을까.
이번시즌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 7차전.
이 게임에서 이기는 팀이 이번시즌의 최강자가 된다.
현재 상황은 9회말 우리 팀의 마지막 공격.
점수는 8:7로 1점 뒤지고 있다. 2아웃이고 주자는 만루다.
내가 안타를 때려내면 이긴다. 내가 안타를 치지 못하면 진다.
투수는 무조건 나를 잡아야 한다. 나에게 고의로 볼 네개를 던져 나와의 승부를 피할수는 없다.
그럼 내가 진루하고, 1,2,3루상의 주자가  한칸씩 밀려 우리팀이 1득점 하게된다.
그러면 동점. 어떻게 보면 우리팀에겐 꽁짜 득점이다.
투수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절대 그럴일은 없을게다.
이 투수는 나를 무조건 잡으려고 할것이다.
나는 무조건 공을 쳐서 안타로 만들어야 한다.
내 야구인생 최고의 기회다. 안타를 치면 나는 영웅이 된다.
안타를 쳐내지 못하면 나에겐 질타와 욕설만이 남게 되겠지..
나를 믿고 이번 타석에 나를 내보내준 감독님의 믿음에도 보답하여야 한다.
감독님은 대타를 쓰지 않으셨다. 나를 믿는다는 거다. 난 무조건 쳐야한다.
시즌 우승이 내손에 달려있다.

드디어 타석에 들어선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홈팀 팬들의 함성이 우렁차다.
반면에 야유를 퍼붓는 어웨이 팀 팬들의 야유소리 또한 우렁차다.
몇몇 어웨이 팬들은 "삼진!!삼진!!"을 외치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욕설도 들려온다.
이정도 야유와 비아냥에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프로야구 팀의 4번타자가 고작 이정도의 야유에 흔들릴 정도라면, 나는 이자리에 서지 못했을게다.
오히려 함성소리에 조금씩 차오르는 긴장감이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것 같다.
타석에 섰다. 앉아있는 적팀 포수와 투수또한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
그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느껴진다.
저 투수는 적팀의 마무리투수. 직구가 위력적인 투수다.
묵직하고 구속이 빠른 직구를 던져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 게다가 제구까지 완벽하다.
치기 어려운 곳에 묵직한 공을 때려넣는 투수. 좋은투수이자 무서운 투수.
마지막 타자인 나를 잡아내기위해 방금 구원등판한 투수다.
칼같은 제구와 묵직한 구위.
하지만 정확한 제구를 가진투수가 더 치기 쉽다.
예상만 맞아 떨어지면 그 위치에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나 하나만 잡고 내려가도 저 투수는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겠지.
하지만 그럴일은 없다. 난 안타를 칠테니까.

투수와 포수가 싸인을 주고받는다. 첫번째 싸인에 투수가 고개를 흔든다.
직구에 자신있는 저 투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포수는 아마도 변화구를 요구했겠지.
이 위험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없는 변화구를 던질만큼 배짱좋은 투수는 아닌가보다.
익숙하지 못한 공을 던져 포수가 잡아내지 못하고 공이 뒤로 빠진다면,
꽁짜로 1루씩 진루. 그런 부담을 첫번째 공부터 짊어지고 싶진 않을거다.
두번째 포수의 싸인에 투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감이왔다. 이건 십중팔구 직구다.
아니, 무조건 직구다. 그럼 코스는 어딜까?
포수가 미트를 대는 위치를 본다. 내 몸쪽 낮은 곳에 포수의 미트가 있다.
몸쪽 낮은공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직구. 확실하다.
배트를 짧게 잡는다. 장타는 필요없다.
2아웃이니 내가 공을 배트에 맞추기만 하면, 주자들은 일제히 뛰기 시작할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건 짧은 안타다. 쳐 내기만 하면 2루 주자까지 홈에 들어온다. 짧은 단타하나만 쳐도 충분하다.
내 몸쪽 낮은 공 직구. 145~150사이의 빠른 직구가 올 것이다. 마음은 정했다.

투수의 손이 글러브에 들어간다. 저 안에서 투수는 분명히 공을 직구 그립으로 잡고있을거다.
100%직구다. 무조건 친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구속이 약간 느리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무조건 직구다. 직구가 아니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
짧게 쥔 방망이를 몸쪽 낮은 스트라이크 코스에 휘두른다. 분명히 맞는다!!

이럴수가? 헛스윙이다..
내 스윙은 정확했다. 방망이를 짧게 잡았지만 홈런이 됐을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왜..?
슬라이더였다.
아래쪽으로 휘는 슬라이더.. 배트 밑 2cm쯤 밑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완벽하게 당했다. 가만히 뒀으면 볼이었을 공..
설마 9회말 2사 만루에서 초구를 볼을 던질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명백하게 내 실수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 칼같은 제구를 보이다니..
역시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운 피칭이다.. 첫번째 공에선 완벽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긴장하지 말자. 다음공이 있다. 고작 1스트라이크다. 다음공을 예상해보자.

첫번째 공을 변화구 볼로 던져서 내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절대로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볼을 던져서 내 헛스윙을 유도하겠지.
하지만 그정도에 속을만큼 배트를 막휘두르진 않는다. 다음은 볼이다.
투,포수가 싸인을 주고 받는다. 투수가 거절하지 않는다.
아마도 부담없는 낮은쪽 볼일것이다. 투수의 미트또한 낮다.
아마도 느린 커브가 들어올거다. 절대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역시, 느릿한 커브볼이다. 멀리서부터 뚝 떨어지는 커브볼.
바닥을 때리고 포수의 미트로 들어간다.
내가 초구에 헛스윙을 한것을 보고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쉽게 배트가 나갈거라고 판단했나보다.
이정도에 속을정도면 내가 4번타자가 아니지..
1스트라이크 1볼.
두번째 공 승부에선 내가 이겼다.

그럼 세번째 공은?
방근 두번째 공이 느린 커브가 들어왔다. 정석대로가면 다음공은 빠른 직구다.
느린공을 던져 내 타격 타이밍을 흐트러놓고 빠른공을 던져 내 스윙보다 빠른직구를 집어넣겠지..
그렇지만 그런 뻔한 볼배합을 할까?
9회말 투아웃인 이상황에서??
음...공 두개를 던졌고 두개 모두가 변화구였다.
직구가 주무기인 투순데 두개연속 변화구를 던졌다라..
그렇다면 너무 뻔해도 정석을 믿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이번에는 직구다. 최소한 이번에는 직구다.
높은공은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니, 낮은 직구다.
첫번째 예상했던 공을 지금 던질게다. 첫번째 타격했던거랑 똑같이 타격하면 된다!!

투수의 손이 글러브에 들어간다. 저 글러브 안에 공을쥔 투수의 손모양만 볼수있다면..
아..정말 1억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난 마음을 정했고, 그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
확신을 갖자!

공이 날아온다. 속도를 보니 역시!! 직구다.
확신에찬 배트가 나간다.
어..? 근데 좀 이상하다!!
공이 너무 높다! 이 코스로 배트가 나간다면 절대 못친다!
배트를 내뻗는 손목힘을 반대쪽으로 준다.
가까스로 배트가 멈춘다.
공은 직구가 맞았으나, 높은공이었다. 높은쪽 직구 유인구...
눈은 자연스레 1루 심판을 향한다.
1루심판은 내 배트가 돌아가지 않았다고 판결을 내린다.
배트가 조금만 더 나갔다면..틀림없이 헛스윙이 선언됐을것이다.
천만 다행이다. 1스트라이크 2볼..

이 투,포수 배터리 콤비는 생각보다 교활하다.
내 예상에서 한발짝씩 더 나가고 있다..
직구를 슬슬 던지기 시작했다.
다음공도 아마 직구. 이제부터 저 위력적인 직구를 노골적으로 던질것이다.
칠수 있을테면 쳐봐라식, 위력적인 직구피칭.
위력적인 직구에는 힘을 가득 실은 스윙만이 살길이다.
어설픈 힘으로 짧게잡고 치면, 공이 날아오는 배트가 힘에 밀려 공이 위로 뜨게되고,
그 공이 바닥이 튕기지 않고 잡히게 되면 플라이 아웃.
그럼 올시즌은 여기서 끝난다.
배트를 고쳐잡는다. 평소에 잡던대로 배트 끝을 잡는다.
힘으로 던진다고? 그럼 난 힘으로 치면 된다.

공이 던져졌다. 약간 높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묵직한 직구.
공을 때렸다.
그러나 역시.. 직구 구위가 대단한 투수다.
배트가 밀려 공이 뒷그물을 때린다.
회심의 공을 회심의 배트질로 받아쳤으나 힘에 밀려 공이 뒤로 밀렸다.
파울선언. 2스트라이크 2볼.
스트라이크 한번만 더 판정을 받으면 경기는 끝난다.
그럼 남은 기회는 한번인가?
그렇지 않다. 2스트라이크에서는 아무리 파울을 때려내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않는다.
내 맘에 들지않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면, 어떻게든 배트에 맞춰 파울로 만들면 된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는 직구는 건드려 파울로 만든다.
어차피 너무 묵직한 직구, 쳐내면 안타는 거의 나오지 않고 공은 위로 뜨게된다.
직구는 걷어내서 파울로만 만든다.
앞으로는 변화구만 노린다.

2번의 직구가 더 날아왔다. 다행히도 두번다 배트를 맞춰 파울을 만드는데 성공.
한번은 어이없는 바깥쪽 변화구가 날아왔다. 당연히 치지않았다.
저정도에 속을리가 없지..
이쯤되면 투,포수 배터리도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변화구만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직구는 무조건 걷어내서 파울이 된다.
그렇다면 던질 수 있는 공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의 직구나, 변화구.
존 밖의 직구는 던질 수 없다. 존 밖인지, 안인지 그정도 궤적 판단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 수 있는건 변화구.
이 중요한 와중에 존 밖으로 변화구를 던지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존 안으로 들어오는 변화구. 내가 노리던 그순간이다.
지금 친다.

투수가 공을 던진다.
역시 변화구다. 내가 노리던 그 공이다.
대차게 배트를 휘두른다.
결과는
(끝)


스트라이크와 볼의 배합을 통한 타석에서 심리게임을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수 없어
이처럼 작게나마 스토리를 넣어 찌끄려 봤다.
이처럼 프로야구에서는 매 타석마다 투,포수 배터리 콤비와 타자의 작은 심리 전쟁이 벌어진다.
아, 그리고 정말 위력적인 직구는 저렇게 무조건 걷어낼 수 없으나, 진행을 위한 허구라고 보시면 된다.
뉴비가 싸지른 글이니 얼마든지 태클 부탁드린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